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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

인생을 모르고 사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없다.

 

깨달음을 모르고 사는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포기이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 속에는 고유의 성질이 있고 그 성질에 따라 이해의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의 근원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 살려고 한다.


운명이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운명은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만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나에게 있었던 일이 내 삶을 지배한다.

 

인과의 법칙에 의해 운명은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운명은 계속해서 자신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아야 한다.

 

행복의 조건은 근면, 검소, 정직이다.


행복이란 배고프지 않고 걱정이 없고 외롭지 않는 것이다.

 

몸이 음식의 기운을 통해서 성장하는 한편 의식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의해서 성장한다. 즉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이 자신 속에 들어가 쌓여서 영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아무도 가꾸어주지 않은 나무에서 더 좋은 열매가 열린다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자신 속에 있는 일은 항상 자신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한 일이 자신이 얻게 되는 모든 결과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한 일에 의해서 만들어진 근원 속에 존재하는 일은 다시 자신을 움직인다. 이 일을 업이라고 한다.

 

한번 세상에 난 것은 스스로 소멸되지 않고 존재하려고 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남을 가르치고자 하거나  남의 문제를 풀어주고자 할 때, 바로 그런 일들이 업을 짓는 일이 된다.


영체는 기체에 의식이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태어날 때,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과거의 활동은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업이 큰 사람은 진리를 들으면 거부감을 가지고, 업이 크지 않은 사람이 진리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업이 작은 사람이 진리를 들으면 기뻐한다.


스스로 배워서 남에게 축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업의 세계를 살펴보면 현실에 있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역사 속에는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고 모든 것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업 자체도 애착을 가지고 있다. 악업이 큰 사람들이 대부분 오래 산다.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남에게 선업을 지음으로써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하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이 선업을 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업이 클수록 의지가 약하다.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자신이 가진 큰 업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되면 더욱 더 큰 업을 쌓게 된다.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지만, 좋은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업 때문이다.


가슴에 불이 나는 것 처럼 느껴질 때, 증오심이 일어나면 업이 쌓이는 것이고, 증오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업이 타는 것이다.


삶이 힘들다고 해서 평생을 두고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라.


세상의 모든 것은 활동을 통해서 존재하게 된다. 업도 활동을 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다. 업의 조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업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사람을 깨우칠 수 있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이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우리가 가진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있는 일을 믿지 않는 것만큼 큰 불행은 없다.


알고 사는 삶과 모르고 사는 삶의 차이는 엄청나다.


‘깨달아라’라고 하는 말은 '자신 속에 있는 일을 알고 행하라'라는 뜻이다.


삶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아니라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남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자신을 깨닫게 하는 것이 왜 이토록 힘듭니까?


있는 일 속에 모든 해답이 존재한다.


아무리 깨닫고 싶어도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깨달을 수가 없다.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깨달음에 접근할 수 있다.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는 분별력은 과거 자신 속에 있었던 일에 의해 만들어진다.


깨달음은 사람의 희망이나 욕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남을 사랑하고 자신을 깨우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가 자신을 속게 하고 남을 속게 만들고 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자신 속에 진실을 얻는 것이다.


깨달으면 누구나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사회가 망하기 전에 사람들의 의식이 먼저 망한다.


깨달음이 없는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바탕이 빠져 있는 이론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가르침에는 근본과 바탕이 있어야 한다.


정신을 좋은 바탕에 심어야 좋은 자신으로 바뀔 수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자신과 자신의 미래, 그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 많은 법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만든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 인간 사회를 밝히는 빛.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을 주장하지 못한다.


어두운 한밤중에 행동할 때와 밝은 대낮에 행동할 때의 차이는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 살 때와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 때의 차이와 같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 때문에 능력을 가진 자가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인간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정의이다. 정의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의 근원에 비유될 수 있다.


세상을 밝혀주는 빛인 정의가 사라진 어두운 사회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있는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있는 일을 맡길 수 있는가?


정의가 실종된 나라에는 양심과 도덕을 아는 자가 없다.


사람들은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이 서로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랑과 도덕은 같은 뜻을 가진 말이다.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는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가 실종된 어두운 사회에서 어떻게 뛰어난 자가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랑을 모른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양심과 정의를 선사하는 것이 세상을 위한 사랑이다.


사랑은 세상을 축복하는 것이다.


정의가 있으면 법은 없어도 된다.


정의가 없다면 있는 일을 밝힐 수 없다. 이것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밝힐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 사회는 올바른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 흥할 수 있다. 그리고 정의를 통해서 올바른 인간의 활동은 더욱 활발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윤리는 가르쳐지고 있으나 도덕은 가르쳐지고 있지 않다.


정의가 없으면 도덕이 설 수 없고, 도덕이 없으면 윤리는 설 수 없다.


인간이 모를 때 인간의 사고는 어떤 행동도 하게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모를 때 그릇된 사고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의식을 통해서 사고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 사고는 동물의 것과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불행은 정의의 실종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의가 없다면 그 사회에는 부정부패, 탐관오리, 그리고 사기와 협잡만이 더욱 만연할 것이다.


깨달음이 없다면 정의를 세울 수 없다.


참다운 교육은 있는 일을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을 배워야 한다.


있는 일을 알아야 그 있는 일을 축복할 수 있다.


해답은 문제 속에 존재한다.


지혜 : 사물을 보는 시각.


지식 : 배워서 쌓인 것.


인간이 가진 지식 속에는 잘못된 것이 많다.


인재는 양성되지만 천재는 자신 속에서 난다.


인재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천재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 통치자는 절대적인 신과 같다.


진리가 통하지 않고 정의가 실종된 사회는 너무나 위험하다.


우리가 하는 일에 따라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사람은 동일한 실수를 잘한다. 그 실수를 유발시키는데는 근원적인 일이 있다.


운명이란 바꿀 수 있고 바꾸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윤회란 만물이 자신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일을 말한다. 인간 뿐만 아니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일 또한 윤회를 겪는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 그리고 전세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 사회가 다른 사회들을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사회에 뛰어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교는 과정은 빼고 문제와 답만을 가르쳤다. 유교는 배우면 배울수록 장님이 된다.


있는 일이 길흉화복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자이다.


좋은 스승은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실에 밝은 자이다.


믿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깨달음이 없는 믿음은 해가 될 수도 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있는 일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있는 일을 알면 운명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한다.


진리는 세상을 있게 하는 길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양심을 바로 세울 때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즉 밝은 세상에서 밝은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행복은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다. 행복이란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밝은 마음을 가지는 상황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근면, 검소, 정직함이 행복을 얻는 길이다.


지킬 것을 지키지 않으면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가 없다. 평화와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진리와 정의가 무시된 사회에서는 근면, 검소, 정직함이 행복을 얻는 길이라는 뜻이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시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캄캄한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자신이 한 일이 보람으로 이어질 때 기쁨이 있다. 기쁨은 자신이 한 일에 의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상대방을 판단한다.


건강한 자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인정이나 동정심에 의한 행동이다.


카네기의 책을 읽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책에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리(도덕, 법칙, 약속)와의 약속을 통해서만이 행복을 이룰 수 있다.


남을 사랑하라고 하는 말은 땅에 거름을 주라고 하는 말과 같다.


세상에 대해 눈을 뜨기 위해서 교육은 필요하다.


환자를 진단하지 않고 처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부처는 일반사람들을 눈 뜬 장님과 같다고 했다.


지키고 행하는 일이 농사일과 같다.


일반사람들은 진리 속에 있는 가르침을 잊고 산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성인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석가모니는 인간 사회에 큰 축복을 주고자 하였다.


위선자는 사랑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권위가 필요하다.


석가모니가 받았던 박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예수는 음해와 무고에 의해서 죄 없이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진리적인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 완성의 길을 인간에게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성인이라고 불린다.


위선자들은 살아서는 성인의 대접을 받았지만, 죽어서는 그렇지 못했다. 왜? 진리적인 가르침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인의 삶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인들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을 알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있는 일을 확인하고 이해해야 한다.


성인에게는 가르침이 있지만, 종교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의식을 버리고 지혜 있는 사람의 근본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을 축복하는 길이다.


사람들이 성인의 이름을 팔아 종교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성인에 대한 모독이다.


어두운 사회에서 종교가 성행하고 팽창한다.


성인들의 삶은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무지가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은 육체와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은 인간의 활동의 근원이며, 곧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각기 다른 의식을 가진다. 자신의 의식 속에 없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진리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과의 법이란 어떤 것과 다른 어떤 것이 만나서 생기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일이 있게 되는 진리이다. 인과의 법칙은 수학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있는 일을 모를 때,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다.


운명은 고정적일 수도 있고 변동적일 수도 있다.


여래란 진리 속에 있는 일을 보는 자를 말한다.


성인이란 완성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와 맹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였을 뿐이다. 공자의 가르침 속에는 빛이 없다. 유교의 가르침은 이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양에서의 '사랑'은 동양에서의 '도'와 같다.


어떤 말을 믿기 어려우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말고 확인을 해보아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이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해도 쓸모가 없다.


‘좋은 열매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좋은 열매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떻게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성인의 증거는 말과 행동과 행적 속에 있다.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대단한 선근(善根)이 있어야 한다.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일을 두고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있는 일은 확인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을 듣고, 있는 일을 관찰하면 있는 일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영과의 접촉이다. 영과의 접촉을 하게 되면 자기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변질된 진리는 독과 같다.


부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있는 일을 말했다." 중생들은 있는 일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지구의 활동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훌륭한 사람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진리를 전하는 일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큰 공덕을 짓는 일이다.


생각을 믿지 않고 있는 일에 의지하게 되면 의식 속에 있는 생각이 없어진다.


존재하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결과를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세상의 활동이다.


'변화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통해서 계속해서 존재해 오고 있다.


세상은 '윤회', 다시 말해서, 반복 현상의 원리에 의해서 존재해 오고 있다.


세상은 신의 뜻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일의 뜻에 의해서 존재한다.


신이 인간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쉽지만, 더 좋게 하는 것은 힘들다.


자기 구원의 길은 먼저 있는 일에 눈을 뜨는 것이고, 있는 일의 이치에 눈을 뜨는 것이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일, 남을 축복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의식 속에 있는 업은 '사랑의 불'이 없으면 절대로 제거되지 않는다.


자신 속에 무지와 애착이 가득 차 있는 자는 있는 일을 들어도 알 수가 없다.


세상의 일은 활동 속의 법칙에 의해 존재한다.


인간의 주체는 의식이다.


의식의 역할은 활동을 조종하는 것이다. 의식은 자신 속에 있는 것을 내놓기도 하고 자신에게 생기는 일을 받아 들이기도 한다.


'변화기'란 한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자기 구원(救援)이 가능하다.


어떤 이유와 어떤 상황에서 변화기가 일어나는지를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는 자는 영원히 구원을 받지만, 남에게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계의 활동 속에서 창조되었다.


얼마나 진실한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진실이 큰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있는 일'을 말하며, 거짓이 큰 사람은 그 반대이다.


세상을 알게 되면 거짓을 말하기가 어렵게 된다.


있는 일을 통해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깨달음이 필요하다. 있는 일에 대한 진실성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있는 일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신(神귀신, 신)은 현상만 보지, 있는 일의 길은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있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있는 일을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의 일을 밝힌다는 뜻이다.


무지는 악의 원인이다. 알게 되면 모든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있는 일을 보고 진실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상대방의 말, 행동, 하는 일을 기준으로 상대를 보아야 한다. 남의 이야기에 의존하지 말고, 있는 일을 조목조목 따져서 확인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은 있는 일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일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있는 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의 삶의 목적은 좋은 자신을 얻는 것이다. 이 길은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정도(正道)와 사도(邪道)의 판단 기준은 가르침이다. 바른 가르침을 가진 길은 정도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도이다. 가르침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있는 일' 속에 존재한다.


있는 일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좋은 환경 속에서 진실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 높다. 그러나 깨달은 자의 가르침이 없이 진실하게 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결과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깨달은 자를 통해서 있는 일을 배우면 더 빠르고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가르침을 배웠다면 그 가르침의 뜻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살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살 수 있을 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 농사 짓는 기술을 배웠다면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기술은 쓸모가 없게 된다.


인간이 자신을 보존하는 길은 깨달음이다. 즉,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통해서 배운 뜻을 실천하여야 한다.


남을 축복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축복할 수 없다.


아무리 악한 자도 깨우쳐 놓으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있는 일을 들으면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있는 일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눈뜬 장님들은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만 해야 한다.


남이 당신의 거짓을 믿었다면 그것은 속임수가 된다. 즉, 남이 손해를 입게 된다는 의미이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버릇이 되고, 결국 업이 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기꾼에게 속기가 쉽다.

하나의 이치에 의해서 현상계의 만물이 존재한다.


세상은 그 세상이 가진 구조와 그 구조의 활동에 의해서 존재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의식이 망할 때 인간 세계에 종말이 온다.


생명의 기운을 정화시키면 누구나 영생에 이를 수 있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배우지도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사람들이 있는 일을 보고도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사람들을 눈 뜬 장님과 같다고 말했다.


좋은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좋은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깨닫기 전에는 진실을 보기가 어렵고, 깨달은 후에는 거짓을 보기가 어렵다.


현실 속에서 자신을 일깨우는 공부가 좋은 공부이다.


어둠은 빛을, 빛은 어둠을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어둠이 빛을 만나면 어둠이 깨어져서 죽게 되고, 빛이 어둠을 만나면 빛이 어둠에 휩싸여서 죽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의식이 두 개인 사람은 두 가지 형태의 행동을 보인다.


진리와 사실의 관계 : 사실들의 관계를 통해서 진리를 볼 수 있고, 진리를 통해서 사실들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자신 속의 잘못된 모든 것을 버려야만 진정 옳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 사회는 그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가 허약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육체가 불편한 자라도 영혼을 지킬 수는 있지만, 자기의 영혼이 다른 영혼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경우에는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가 없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근본마저 망치게 된다.


여러분이 자신을 보존하는 길은 깨달음이며 또 그 깨달음을 통해서 배운 뜻을 행할 수 있다.


 사실을 밝히는 것은 '정도(正道)'이고, 사실을 숨기는 것은 '사도(邪道)'이다. 정도(正道)는 항상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정도를 따르던 사람이 사도에 빠지는 것은 쉽지만, 사도를 따르던 사람이 정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비슷한 예로,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사고를 당하여 불구가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번 불구가 된 사람이 정상적인 신체를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부처가 그의 삶을 통해서 가르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과의 법이다. 어떤 문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하는 일을 말한다.


문제가 없는 해답만 가진 사람들은 항상 쓸모없는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이 깨달아야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을 부정해서도 안되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업이 인간의 운명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다.


독약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만, 보약은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나쁜 운명을 가진 자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삶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다.


종교는 문제 없는 해답만 말한다.


업이 없는 사람은 남도 망치지 않고 자신도 망치지 않는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다른 운명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과거의 삶 속에 존재했던 일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알맞은 목적, 대안, 지침, 그리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알아서 그것을 거부하고, 좋은 운명을 가진 자의 일을 따르면서 좋은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좋은 운명을 지을 수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안다 혹은, 모른다고 말할 때, 그 말에 대해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문제를 보고, 이해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 속에 한이나 애착이 큰 자는 편안하게 죽을 수 조차 없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의 진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생명체나 물질은 인연(因緣)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어떤 인연을 받아들이고 어떤 인연이 자신 속에서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지어지는 운명은 다르다.


튼튼한 씨앗(근본)과 좋은 땅(바탕)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


다른 영혼이 몸 속에 들어오면 분별력을 잃게 되고, 몸이 아프게 되고, 일을 잘 할 수 없게 된다.


운명의 근원은 자신 속에 있는 일이다.


세상의 일이란 꿈(夢)과 이상(理想)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잘 살기를 원한다면 잘 살 수 있는 원인을 지어야 한다.


깨달은 자는 있는 일을 보고, 그 속에 있는 문제와 그 문제가 가진 해답을 본다.


일반 사람은 똑같은 일을 수십 번 경험해도 그 일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욕망 속에서 산다.


사람의 근본과 바탕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위선이 존재하는 곳에는 사람이 많지만 진실이 존재하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깨달음이 없이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과 악의 근본은 깨달음 속에 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있는 일을 통하여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고, 욕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의지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


인간은 삶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순수한 사람은 양심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자와 바보는 구분되어야 한다.


현재의 삶은 끝없는 내세로 이어진다.


있는 일을 알지 못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이 있는 일을 제대로 알게 되면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


보약은 먹기가 힘들고 마약은 끊기가 어렵다.


사람이 한을 갖지 않는 길은 사랑을 아는 일이다.


애착을 소망으로 바꾸고 한을 사랑으로 바꾸어라.


착한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이다.


옳고 그름이 없다면 좋은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옳고 그름이다.


깨달음은 업을 억제하는 것이고, 공덕행은 업을 태우는 것이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남이 자신을 속이기를 바라고 있다. 남을 속이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있다.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있는 일에 대해서 깨달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서 노력하라.


있는 일을 밝히는 일은 결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일이야말로 자신과 인류를 위한 길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애착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고 있다. 애착을 버리고 소망을 가져라.


깨달음이란 있는 일을 본다는 뜻이다. 깨닫지 못한 자가 깨달은 자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세상에 대해 눈을 떠라.


모든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존재한다.


좋은 세상이나 나쁜 세상은 그 세상 속의 사람들이 만든다.


어두운 사회에서는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밝아지고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은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운명이란 있었던 일이 자신의 속에 쌓여서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있는 일의 문제를 보지 못한다.


깨달은 자를 만나지 못하면 깨닫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의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말을 남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 아닌가?


자신 속에 존재하는 업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해탈을 통한 완전한 깨달음은 성취할 수 없다.


우울증, 자폐증, 정신분열증은 죽은 영혼이 산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발생되는 정신 질병이다.


있는 일을 배우며 사는 사람은 죽어도 한이나 애착이 크지 않다. 한과 애착이 큰 영혼은 죽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느낀다.


영혼은 그 의식이 죽어야 새로운 생명체로 날 수 있다.


 리더십이란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하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리더십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잘 다룬다. 리더십은 경영이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경영을 좌우한다.


여러분이 부족한 것은 이해를 통하여 보충해야 한다.


새로운 의식을 받아들여서 앎으로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문제가 없는 답을 말하고 있다. 문제가 없는 답은 쓸모가 없다.


의식의 근원에 있는 일들에 따라서 판단과 행동, 그리고 성질이 결정된다. 리더십은 그 의식의 근원에 있는 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리더십은 학력과 무관하다.


일을 배워라.


교육의 질이 좋고 나쁨에 따라 의식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


삶을 통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그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을 관찰하라.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관찰하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이 있는 일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과연 무엇을 아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만큼 진실해진다.


깨달은 자는 인과를 가르친다.


깨달은 자는 거울과 같다.


삶의 소중함을 알면 자신을 망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말은 자신의 뜻에 의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람의 의식은 환경에 의해서 길들여진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신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만든다.


깨닫지 못하여 나쁜 의식을 가진 자가 학력만 높으면 그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 속에 있었던 일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앞날은 자신의 삶 속에 존재한다. 삶을 어렵게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알면 세상 일이 쉽고, 세상을 모르면 세상 일이 어렵다.


있는 일을 계속 듣고 보고 배우게 되면 업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업을 가지고 있으며, 업의 조종을 받는다. 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있는 일을 통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현실과 자신이 맞지 않을 때 좌절과 절망감이 생길 때가 있다. 소망과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숫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처럼, 있는 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 일이 괴롭다는 이유로 자살을 한다고 해서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살은 육체의 생명을 죽일 수는 있지만, 영혼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더욱더 괴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의 진실을 모르고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당시에는 보약이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잘못 보관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독약이 되었다.


교육은 있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있는 일을 앎으로써 자신의 업을 이길 수 있다.


재물은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만, 그 재물 때문에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강도는 육체적 생명을 빼앗아 가지만 종교는 영혼의 생명마저 빼앗아 간다.


거짓은 사회 모두의 적이다. 한 사회에서 거짓이 성공하게 될 때 그 사회는 멸망하게 된다.


거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은 수모와 위험이 따른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가지고 있는 밝은 마음을 세상에 알릴 수 없는 사람이다.


인간의 의식은 애착이나 욕망에 의해서 나쁜 쪽으로 변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계속해서 나쁘게 변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좋은 가르침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세상이 좋아질 수도 있다.


세상을 보고 살아라. 그러면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다.


깨달은 자가 가르치는 깨달음은 사람들에게 있는 일을 보게 하는 것이며 있는 일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보아야 하고 사회를 보기 위해서는 그 사회 속의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현실에 충실하라.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있는 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다.


무엇으로 인간 사회의 힘을 뭉칠 수 있는가? 그것은 진실이다.


구체적인 대책이 없는 말은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다.


지혜가 힘을 얻지 못할 때 그 지혜는 이상적인 꿈에 지나지 않는다.


공부를 하는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다.


인간은 삶을 통하여 내세의 근원을 만든다.


있는 일을 제대로 보게 될 때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가게 된다.


삶에 대한 무관심이 사회를 더욱 어둡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은 있는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을 상실하고 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사실들이 대중 매체를 통해서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는데, 이는 사회에 큰 불행을 끼친다. 명확하게 보지 않은 사실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좋은 가르침은 있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깨닫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기 위함이다.


인간의 의식은 근본과 바탕에 있던 일을 저장하게 된다.


 정의란 있는 일을 밝혀서 부당한 일(속거나 억울한 일을 당함)을 당하는 일이 없는 밝은 사회를 만드는 일을 말한다.


모든 것은 반복(反復) 활동을 통해서 자신을 존재하게 한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사회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많다.


거짓은 영혼을 죽인다.


업(業)의 영향에 의해서 나타나는 일을 운명(運命)이라고 말한다.


 가장 좋은 교육은 있는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육은 지식을 암기하도록 함으로써 인간을 앵무새처럼 만들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은 세상을 망친다.


어떤 일이 어떤 이유에 의해서 어떠한 결과를 만들게 되는지를 볼 수 있는 시각(視覺)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 역사는 영웅에 의해서 바뀌어질 수 있다.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선(善)과 악(惡)은 있는 일에 의하여 결정되고 존재하게 된다.


진리가 드러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인간이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동물과 같다.


인연(因緣)이 없는 중생은 부처도 구할 길이 없다.


생명은 육체와 의식체로 이루어진다.


깨달음은 생명의 빛이다.


삶은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며, 삶은 깨달음에 의해 구해질 수 있다. 삶을 구한다는 것은 미래를 구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학생에게 체벌을 해야하는가 혹은 하지 말아야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체벌을 해야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체벌을 할 것인가 하는 체벌에 어떤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쁜 것을 숨기고 좋은 것을 내세우면 나쁜 것은 불행을 만들 것이고 좋은 것은 위험을 부를 것이다.


윤회(輪廻)가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된다. 자신 속에 존재하는 일들에 의해서 윤회를 통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 자신을 상실하게 되면 윤회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윤회 속의 일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 자신을 있게 한다.


삶을 망친 자는 영혼도 망친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 속의 일들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할 때, 인간은 애착과 한을 가지게 된다. 같은 식으로, 있는 일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 애착과 한을 버릴 수 있다.


모르는 일을 할 때는 아는 사람에게 배워서 행하라.


진실은 빛에 비유되고 거짓은 어둠에 비유된다.


육체는 의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의식은 육체를 조종하는 운전사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의식이나 육체를 통해서 마음을 만든다. 즉 마음이란 의식이나 육체가 활동을 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신(神)은 이치 속에 있는 일을 모른다.


깨달은 자에게 무엇을 아느냐라고 묻는 것은 볼 수 있는 자에게 무엇을 볼 수 있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


신은 어떤 일에 대한 문제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일단 신과 접촉하게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 신들린 자들은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일도 행한다. 산 자는 자신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다.


본래 종교란 인간에게 선한 마음을 갖게 하는 길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러나 현대의 종교들은 '신풀이'를 하는 곳이다. '신풀이'란 신이 가진 한과 애착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신(神)이란 생명체에서 분리된 의식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에 의해 속고 있다. 신은 인간에게 좋은 영향보다는 나쁜 영향을 더 끼친다. 신은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하거나 정신을 혼란하게 하기도 하고 집안에 분란(紛亂)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은 인간을 구할 수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생명 활동을 통해서 의식체를 만드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신과의 접촉으로 자신을 상실하게 되면 편안해진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영체(靈體)가 한과 애착에 붙잡혀 있으면 윤회하기가 힘들다.


신이 활동을 하게 되면 신은 제 의식이 가진 힘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동물이나 식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존재하는 일이 새로운 일을 있게 하는 근원이다. 있는 일을 알 때와 모를 때는 그 행동에 큰 차이가 있다.


있는 일을 두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눈뜬 장님이라고 한다.


생명체는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윤회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게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공덕이다.


인간들은 말세가 되면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신을 청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자 하면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때 자신의 업을 태우게 된다. 업은 사랑의 불로만 태울 수 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있는 일을 알지 못하고 행한다면 그 일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사회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의식이 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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