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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10: 업이란 무엇인가?

1998년 5월 10일


‘업’이란 무엇인가?


우리들 속에 전해져 오고 있는 말 중에 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말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정확하게 그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과연 업이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업은 자신을 움직이는 근원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을 말합니다. 이 근원 속에 있는 업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좀더 큰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근원 속에 있는 업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한 일이 의식 속에 입력 됨으로써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연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에서는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자신의 열매 즉 결과 속에 입력을 시킵니다.


 인간은 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의 경우 자신이 한 일들을 이 의식 속에 전부 입력시킵니다.


 의식은 영체의 구실을 하고, 영체가 죽음에 임하게 되어 인체와 분리되면 독자적인 자신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영체 속에서 작용하고 있던 의식이 사라지면 영체는 곧 생명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의식이 사라졌다고 해서 과거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은 사라졌지만 영체 속에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속에 잠재하고 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은 영원히 자신들을 존재시키려고 합니다. 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의 일을 깨닫기 위해서는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있으며 어떤 일들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을 존재하게 하는 뜻은 단 두 개가 있습니다. 세상은 이 두 가지의 뜻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는 ‘인과법(因果法)’ 입니다. 좋아지고 나빠지고 하는 현상은 이 인과법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윤회(輪廻)’ 입니다. 윤회라는 것은 모든 것이 계속해서 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반복현상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와 과거를 끝없이 돌고 있습니다.


 인간과 같은 생명체 뿐만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만물이 인과법에 따라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번 세상에 난 것은 스스로 소멸되지 않고 스스로를 존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도 그런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입력되면 절대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려고 합니다.


 우리 속에 어떤 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에 의해서 삶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결국 어떤 일을 자신 속에 존재하게 했는가에 따라서 현세에 존재하게 되는 일들이 달라지고 내세에 존재하게 될 일들이 달라집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인연을 짓는 일입니다. 사람이 나쁜 것과 인연을 지으면 거기에서 나쁜 것이 생기게 되고, 좋은 것과 인연을 지으면 좋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법’입니다.


 업은 인과에 의해서 자신에게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업이 존재하는 한, 사람은 업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살고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업이 큰 사람이 하는 일은 남을 망치게 됩니다. 자신이 잘 살려고 하는 일이 남을 망치고, 내가 좋아지려고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 속에 잘 살 수 있거나 좋아질 수 있는 근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 속에 없는 일이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이런 경우에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 없이는 절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업의 지시를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든지 목격됩니다. 이것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누구도 이런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까요? 좋은 일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은 엄격합니다. 진리는 엄격합니다. 수학에서 2+2의 답이 절대 1이나 5가 될 수 없듯이 진리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일은 불변합니다.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눈을 뜨고 보아야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제대로 되어 가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산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우리의 생활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을 하였습니다만 만일 사람들에게 행한 일의 60%가 좋은 결과를 만들었고 40%가 자신의 무지로 인한 실수였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자기의 감정이나 잘못된 성질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면 잘못된 일을 고쳐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인하여 자신이 자신 속에 지은 일의 악업이 60%이고 선업이 40%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더 큰 힘이 자신을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10년 동안이나 배웠는데 깨달음이 없었을까요? 깨달음이 없으면 진리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니까 이건 반풍수예요.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사회 구성원들의 업으로부터 즉 과거 자신들 속에 있었던 일들로 인하여 생기고 있는데 세상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말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보기입니다. 1950년의 우리 사회가 어땠고 1998년의 우리 사회가 어떤지에 대해서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에 물어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을 그렇지 않았는데 요새 사람들은 무섭다.’


 이 말은 사람의 업이 1950년대의 사람들보다도 1998년도의 사람들이 더 큰 업을 지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 업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될까요?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 생기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업은 어떻게 짓게 될까요?말이나 행동으로 업을 짓게 됩니다. 말로 어떤 업을 짓게 될까요? 자신이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면은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거짓말은 남을 망치는 일이지요? 이건 말로 짓는 업입니다. 그래서 과거 부처의 밑에서 제대로 배웠던 사람들은 이렇게 경전에 써놓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깨달은 분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이 업의 세계의 일을 그의 제자들에게 설명을 했던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 일을 듣고 자신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 라고 썼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깨달아서 세상의 일들을 직접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몰라도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세상일을 한 번 살펴봅시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입니다. 농사일에서 좋은 수확을 얻어 많은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농사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농대의 교수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농대 학생들이 농사일을 잘하는 농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잘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 니다. 제대로 된 사람한테 배워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한테 배워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대의 교수가 미국의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계공학이면 기계를 설계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교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교수 생활을 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밑에서 배우는 사람들은 실제로 유능하게 기계를 설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경제를 가르치려면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이나 여건을 이겨서 생활을 아무 문제가 없게 만든 사람을 경제학 교수로 뽑으면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서 잘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티비에서 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뭔가를 어떻게 하면 뭐가 잘된다는 등 이런 저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자신은 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여. 그런 사람을 초대해서 방송을 시키는 방송국 사람들도 읏기는 사람들이야. 책이나 몇 권 읽은 사람을 데려다 놓고 사람들한테 함부로 말을 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 업을 짓는 것입니다.


 업을 짓는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피해주는 일을 자신 스스로 계속 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상대방은 피해 입는 일을 계속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업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온통 업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소란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면서 남들한테는 왜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말라고 합니까?”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제 자식들이 대학에 가건 말건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식들이 나한테 가까이 있는 사람이니까 올바른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한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한테도 누차에 걸쳐서 이야기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학문이 높거나, 학벌이 좋아야 되는 것이 아니고 거짓말 안하고 정직하고 근면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어떻게 학벌을 내세웠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로 흘러가고 있느냐 하면 대학이 전문인이 대접을 받는 시대가 아니고 학벌이 대접을 받는 시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의 업이 큽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고, 남을 지배하고, 남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서 교수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수들 중에서 자신들이 배운 분야에 나가서 실제로 일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매우 드뭅니다. 자신은 스스로 해 보지도 않은 일을 매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교수들로부터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교수들이 가진 것을 그대로 다 배웁니다. 교수들이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까지 전부 배우게 됩니다. 듣고 보고 배운다는 것은 그것들을 자신의 의식 속에 입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을 크게 잘못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엇이 자녀를 축복하고, 자신을 축복하고 그리고 주위를 축복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해서 하나도 모릅니다.


 나는 부모들이 절대로 자식을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려거든 제대로 된 선생을 찾아서 거기에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과연 몇 명의 교수들이 실제로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제대로 일을 해보았겠습니까? 확인해보면 다섯 손가락으로 세어도 다 셀 것입니다. 수만 명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사람은 몇이 안됩니다. 이런 현실 상황으로 비롯된 잘못된 교육이 사람들의 의식을 버려놓았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학교에서 업을 얻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문제가.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일들은 많습니다. 자신 속에는 업, 즉 선업이 아닌 악업(惡業)이 존재합니다. 여기서는 악업이라는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악업이 무엇일까요? 실수를 해서 자신이나 남에게 잘못된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러한 실수를 악업이라고 합니다. 또 자신이 모르고 한 일 즉 무의식중에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이것을 악업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일을 많이 하게 되면 현재와 미래가 끝없이 불행해집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에이 그런 일이 실제로 존재하겠나? 단순히 저 사람 생각이겠지.”


 여러분들이 과거를 믿으면서 미래를 믿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악업이 어떻게 미래에 끝없는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을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기체에 의식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 있을 때에는 기체는 의식의  활동을 통하여 살아있는 모든 사물을 보고 느끼고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죽게 되면 기체가 가지고 있던 의식은 사라집니다. 의식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의식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에 애착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죽지 않으려고 활동을 하니까 살아있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을 때의 기체는 업으로 인해서 매우 혼탁한 상태에 있습니다. 기체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쌀을 예로 들자면 수확된 쌀들은 등급이 나뉘어지는데 3등급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의식이 없어지는 경우에서 인간이 다시 태어날 때 기체는 이전 삶에서 의식의 활동을 통해서 입력된 것들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런 식으로 이전의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 기체는 새로운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생명의 근원을  가진 생명이 다시 태어나면 사라졌던 줄 알았던 의식이 다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상실하는 것뿐이지 의식의 활동을 일으키는 근원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일에 의해서 현재가 영향을 받고 현재의 일에 의해서 미래도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인과법의 원리입니다. 한 번 지어진 것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활동이 존재하는 한 지어진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없어집니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아무런 활동도 안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영체가 식물의 열매와 다른 점은 사람의 영체는 몇 가지의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세계란 천국이나 지옥 같은 세계를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만일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업이 없어지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런 세계를 봅니다.


 생명의 세계는 현재의 세계를 말하고, 사후의 세계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사후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 사이에 근원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생명체는 생명의 세계, 사후의 세계, 근원의 세계, 그리고 다시 생명의 세계 순으로 반복해서 돌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돌고 있는데 근원의 세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원의 세계를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 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정확하게 해석한 말이 있다면 제가 이 자리에서 석가모니가 무엇을 보았고 얼마나 정확하게 말을 했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근원의 세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신(神)도 들어갈 수가 없는 세계입니다. 산 자가 해탈을 했을 때만 이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은 살아있는 세계도 아니고 죽은 세계도 아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의식이 없는 이 세계는 바로 근원의 세계 즉 태어남의 세계입니다. 모든 것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에서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현세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끝없는 내세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말을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여러분에게 전하면서 나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오십시오’라는 말은 더 이상 안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누가 큰 업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큰 업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깨닫기 전에는 옳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과 성질이 다른, 혹은 맞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든가, 불신한다든가 음해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많이 목격됩니다. 역사상 모함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을 모함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모함했다는 소리는 많이 목격됩니다. 예수도 모함을 당했고 소크라테스도 모함을 당했고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임금을 섬긴 충신들도 모함을 당해서 귀양을 가거나 참수를 받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옳은 말을 하고 옳은 일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미움을 받고 모함을 당해서 죽임을 당하는 일은 많이 보았지만 나쁜 사람이 미운 짓을 하다가 모함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일은 못 봤어요. 재수 없게 걸려서 죽거나, 붙잡혀가서 시키는 나쁜 일하다가 재수 없게 죽는 경우는 봤습니다만 모함을 당하는 일은 못 봤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가 언젠가 어떤 계기로 다른 누군가를 모함하거나 음해할 줄 모르기 때문에 지금부터 사람들에게 ‘여기에 오십시오’라고 청하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자신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오시면 오고 안 오시면 안 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도록 나를 깨우쳐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러한 일에 대해서 눈을 뜨고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업이 있어서 이런 인연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연이 업을 만들고, 업이 새로운 인연을 만듭니다.


 세상일은 인연에 따라서 피고 지고 돌고 돕니다. 인연에 따라 피고 지고 돌고 도는 것이 세상일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세상일을 들으면 또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날마다 하는 말을 지겹지도 않은지 또 한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니까 예전에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소연이란 여자 스님은 깨달음을 얻고난 후 제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입니다. 스님이 내 말을 들어보니까 불경에 비슷한 말들이 있어서 좀 알겠거든요. 그래서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스님은 자신의 노모를 같은 집에서 모시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방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그 노모는 방에 안 들어오고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방에 안들어 오십니까?


 소연의 모친이 말했습니다.


 “내는 다 아는 소리다. 맨날 너는 지겹지도 않나? 맨날 들은 소리 또 듣고 또 듣고 하는데 너는 지겹지도 않나? 내는 다 안다.”


 세상의 일을 모르고 들으면 맨날 같은 소리를 똑같이 재탕 삼탕 하는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일은 간단하게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매우 단순해요. ‘인과와 윤회에 의해서 존재한다.’ 이 한 문장이면 됩니다. 이 한 문장에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것을 복잡하게 나누면 엄청나게 복잡한 많은 문제들로 나누어 집니다.


 수학에서 1부터 1조까지의 숫자의 갯수는 별것이 아닙니다. 일부터 1조까지. 그런데 이 사이에 있는 숫자를 이용해서 문제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문제 만드는 일을 끝낼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법도 그렇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이 단순할 때는 단순한 것만 설명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세계에서는 하나하나를 설명할 때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면 하나만 깨달아도 전부를 압니다. 그러나 그 하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거예요.


 왜 깨달은 자가 사람들에게 중요할까요? 그 하나를 깨우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만 깨달으면 세상의 모든 일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길을 만들고 스스로 좋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게 안되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에게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업이 많기 때문에 반대로 나아갑니다. 업이 여러분의 깨달음을 방해합니다.


 업이 큰 사람은 진리를 들으면 성을 냅니다. 성질에 맞지 않아서 거부감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중간 정도 크기의 업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보면 의심을 합니다, 반신반의합니다. 싱긋이 웃고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업이 없는 사람이 진리를 들어야 기뻐합니다. 바로 그거다라거나 옳다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대단하다’라고 말합니다.


  업이 크면 업의 활동으로 인해서 옳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업이 큰 사람에게 억지로 배워서 스스로 깨우치라고 하면 거기에는 마찰이나 시비만 생깁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선생을 만나려거든 있는 일을 제대로 아는 선생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있는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학벌이 높은 사람한테 가서는 배워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좋은 사람한테 가서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500년 동안 유교가 존재해 왔습니다. 유교는 이상적인 학문입니다. 암기만 하면 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물이 들어온 이후에도 암기만 잘하면 대학교수가 되고, 판사나 검사가 되고 행정군수나 국회의원이 되고 사회지도층 인사도 될 수 있습니다.


 암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뇌의 활동이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하룻저녁에 책 두 권을 의식 속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서 일등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학업 성적을 얻어서 대학교수가 되고 지도층 인사가 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현실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시행착오들을 만들게 되고 자신들의 시행착오를 감추기 위해서 말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업 짓는 일입니다.


 업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거나 자신이 실수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입으로 업을 짓는 일입니다. 이러한 업은 항상 되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배우고 알려서 선업을 지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일은 사랑이고 죄가 되는 일은 업 즉 악업입니다. 악업을 짓지 말고 사랑과 축복을 배워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구하는 길이고 스스로 잘되는 길입니다.


 어떻게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바로 깨달음입니다. 이곳에서 있는 가르침이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아예 아무도 모릅니다. 엊그제 저는 저의 밑에 있는 두 사람의 승려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머리를 깎고 그 이상한 회색 바지저고리를 입었다고 해서 모르는 것을 당장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팥이 콩이 되지 않고 돌감 나무에서 단감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현실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현실 도피를 해서 현실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기 위해서 그런 옷을 입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의 의식은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보다 뒤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 어리석습니다.”


 여기 계신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번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절대적 여기에 있는 이 두 사람들이 심성이 괜찮은 사람들이지만 믿지 말라. 이 사람들한테 의지하지 말라.”


 “항상 있는 일 속에 의지하라, 그리고 있는 일을 모를 때는 지혜 있는 사람들한테 가서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확인하라.”


 오늘 업이라는 말을 하면서 현실에 있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현실에서 견딜 수 없는 일들을 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되는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근본이 나쁜 사람은 잘못 살게 되어있습니다. 별로 안 가르쳐도 근본이 좋으면 뛰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역사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일들은 반복됩니다. 인간의 의식 속에 있던 일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도 반복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은 역사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조금만 세상의 일에 눈을 뜬다면 여러분들은 선생 없이 혼자서 배워도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평가는 그 대상에 대한 말이 아닌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에게 존재하고 있는 일 즉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활을 확인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대강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외면하고 남의 말만 듣는다면 속임을 당하는 결과만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속지 않게 하기 위해서 깨달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왜 깨닫고자 합니까? 잘살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이 왜 잘 못삽니까? 잘살려 해도 그것이 왜 잘 안될까요? 잘 살려 하는데도 잘 안되는 것은 그건 의지가 약한 것입니다. 왜 의지가 약합니까? 업이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은 아무 이유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인연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일이나 세상 속에 있는 일들 모두가 인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지 인연이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한 감나무가 돌감을 만들어 냈으면 그 감나무는 계속해서 돌감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돌감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단감을 만들어낸 감나무는 계속해서 단감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기 때문에 단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일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업이 무엇인가? 업은 업이다라고 대답해서는 안됩니다. 업이 뭐냐고 물어 보면 아무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업은 나에게 있었던 일로 인하여 나의 생명의 근원에 존재하게 된 일들을 말합니다. 생명의 근원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업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과거에 나에게 있었던 일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존재한 것은 쉽게 없어지지 아니하니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그 과보를 끝없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지은 큰 업은 수 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됩니다. 업도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죽지 않습니다.(앞면 끝)


 전생에 기생집이나 출입하고 술이나 잘 마시던 사람은 현세에 태어나도 살림은 잘 돌보지 않습니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기생집이나 출입하고 술이나 마시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도 전재산을 탕진해 버립니다. 빈털털이가 되어서야 현세에 까지 이어진 잘못을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빈털털이가 되어서 고생을 좀 한다고 해서 못된 행실이 끝나지 않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또 이전의 행실이 나옵니다. 결국에는 망해 버립니다. 이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전생에서 노름꾼이었던 사람은 현세에 와서도 노름판에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 업이 자신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자신의 의식에 박혀 있기 때문에 같은 행동을 되풀이합니다.


 전생에 그림을 잘 그리던 사람은 현세에 태어나도 화가가 됩니다. 그 사람은 안 배워도 잘 그려요. 그런 일이 자신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라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했다면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업을 짓지 않고, 사람들에게 선업을 행함으로 해서 여러분 자신 속에 좋은 일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그것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손가락질을 하거나 욕을 한다고 해서 그 좋은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내 속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끝없는 미래의 삶들에서도 계속 그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는  수많은 삶들 동안 선업을 쌓은 것입니다. 그 덕분에 악업을 억누를 수 있었고 악업이 적어지고 선업이 커지자 그는 마침내 깨달음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결국 해탈을 이루어 큰 깨달음에 이르를 수 있었습니다.


 선업이 없이는 절대로 해탈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렇기 때문에 승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면 그냥 웃고 맙니다.


 깨달은 사람은 모래밭에 세워놔도 뿌리를 내리고 잘 큽니다. 태어날 때부터 근본이 좋은 사람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윤택케 하는 지혜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있는 일을 볼 때는 있는 일에 걸 맞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짧은 시간에 뛰어난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검사가 되거나 의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좋은 사람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점을 항상 유의하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제 사람에 대해서 큰 욕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연이 없으면 부처도 중생을 구하지 못한다고 하는 옛말이 있습니다. 인연이 없는데 어떻게 중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


 세상의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 보면 윤회와 인과는 안나올 수 없습니다. 똑같은 말이 계속 중복됩니다. 왜 이 말들이 계속 나와야 할까요? 존재하고 있는 일이 만물의 근원입니다. 생명의 근원도, 업의 근원도, 윤회의 근원도, 그리고 인과의 근원 등 모든 일이 존재하고 있는 일에서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눈을 뜰 때까지 인과와 윤회 속에 있는 일은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을 빼버리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들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왜 들어야 할까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있는 일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살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알면 그 다음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부처도 만법귀일(萬法歸一)이란 말을 했습니다.


 수학에서 하나의 문제를 이해해서 풀 수 있게 되면 다른 문제들은 자동적으로 풀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공식 하나를 제대로 알게 되면 있는 일을 보고 세상의 일을 자유자재로 판단하고 풀고 그리고 세상의 뜻에 맞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 뜻에 맞게 살면 화목하고 그리고 어려움 없이 좋은 요령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인도 시대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그 시대의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뜻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 이치 속에 있는 일을 하나만이라도 눈을 뜰 수 있을 것인지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세상일의 이치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눈을 뜰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자신의 머리 속에 주입해서 계속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여러분들은 그 일로 인해서 큰 깨달음을 얻고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간단합니다. 문제가 문제를 만듭니다. 문제가 문제를 만들고 깨달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선업을 자신 속에 쌓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없이 선업을 자신 속에 쌓는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일을 잘 알아서 앞으로 여러분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이 없으면 끝내고. 시간이 좀 늦었네.


 최부군 : 업 자체도 애착을 가진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시오.


 자, 간단하게 보기 하나를 들겠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보면 해답은 거기에 있어요.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죽으면 편안하게 죽습니다. 삶에 대해서 큰 애착을 안 가져요.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합니다.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들, 잘못 산 사람들, 삶이 좀 뒤떨어진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게 왜 이러냐? 거 생명에 대한 애착의 크기가 선업이 큰 자 보다도 악업이 큰 자가 더 컸다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불행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삽니다. 여한이 없이 산 사람들이나 세상에서 남을 적으로 만들지 않은 사람들 혹은 모질게 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오래 산사람은 별로 없어요. 오래 산 사람들을 다 조사해 보면 대부분 그들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2살 먹는 사람이 산다고 해서 가서 확인해 보면 그 이유가 나타나요.


정회심: “하나의 공식이라고 말씀하신거요, 그게 그러면 있는 일을 바로 보는 걸 하나의 공식이라는 말씀하신 거예요?”


 있는 일을 바르게 보는 게 아니고 공식이라는 것은 어떤 일과 어떤 일이 만나서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게 되었을 때 이것을 ‘인연’ 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과 어떤 것이 인연이 닿아서 거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공식이라고 말합니다. 특정한 재료들을 가지고 특정한 공정에서 한 가지 색의 페인트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같은 재료들과 같은 공정을 거치면 항상 같은 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 특정한 합금을 만드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것들을 공식이라고 말하지. 수학의 공식처럼. 어떤 일과 어떤 일이 결합되느냐에 따라서 거기서 나타나는 현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물질은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페인트나 철 등과 같은 예들을 통해서 비유를 들어 공식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식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선근이 크고 악업이 없는 사람들은 악한 일을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것은 스스로 악한 일을 하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근이 작고 그 업이 큰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는 것을 억제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상을 두고 공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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