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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6일: 왜 우리는 일생을 바쳐도 실상을 다 알 수 없는가?

  • 작성자 사진: Bugun Choi
    Bugun Choi
  • 2023년 12월 23일
  • 29분 분량

왜 우리는 일생을 바쳐도 실상을 다 알 수 없는가? 


 저는 여러분들이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서 있는 일에 대한 실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한 실상을 밝히는 일은 일생을 바쳐도 다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설명을 하겠습니다.


 과거 석가모니가 중생을 가르치면서 법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부처를 내세우고 있는 종교인 불교에서는 불법이라는 말로 표현되고도 있습니다. 불법이란 무엇인가? 여러분들이 불법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세상의 일들을 존재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불법이란 현상을 만들어내는 공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공식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집니다. 쉽게 생각하면 아주 쉽습니다. 수학을 알기 전에 먼저 숫자를 알아야 합니다. 숫자를 알아야 만이 수학 문제를 이해하고 풀 수 있습니다. 숫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학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학에서 앞에 있는 문제와 뒤에 있는 문제가 공식에 의해서 존재하게 될 때 이것을 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의 많은 문명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 많은 공식들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수학공식 즉, 수학이 기여한 것입니다. 이러한 수학에서의 공식을 현실에서는 법이라고 합니다.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는 일이 존재하게 되었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지한 자들은 묻습니다. 그 법칙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여러분들이 이런 일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갖기 전까지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원적인 문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근원적인 문제는 어떤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요? 세상의 일을 존재하게 만드는 원인을 근원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만물이 태어나고 거기에 따라서 온갖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의 근원이 무엇인가 혹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부처가 말한 불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다면 어떤 특별한 존재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연 현상을 살펴봄으로써 충분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과학의 존재로 자연 현상은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소우주라고 불립니다. 소우주란 인간의 신체 속에서는 구조역학에 의해서 모든 생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구조역학이란 인간의 신체 속의 각종 기관들이 이루고 있는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각종 기관들의 작용에 의해서 몸이 움직이고 사고(思考)가 발생하고 감정이 생기게 되는 등의 온갖 것들을 인간의 내부에서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도 구조역학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 우주도 존재하고 지구도 존재하고 인간도 존재하고 모든 현상계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속의 현상들을 구조역학으로 살펴봅시다. 세상 속의 모든 일들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구조에 의해서, 구조의 활동에 의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구조는 세상 속에 힘을 존재하게 하고 그 힘을 이용해서 만물을 움직입니다. 자동차가 동력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처럼 세상도 그 구조가 가지고 있는 활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구조의 활동 속에서 온갖 물질과 기운이 만나면 온갖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에 따라 수학의 공식처럼 그 현상에 맞는 공식 즉, 법칙이 존재합니다.


 기형아가 태어났다면 산모가 아이를 잉태하는 과정에 그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이거나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안될 존재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입니다. 후자는 의식활동의 부족으로 사물에 대한 이해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기형적인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박약아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정신박약아의 발생 원인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체기관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후천적인 원인에 의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체기관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정신박약아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선천적인 원인에 의한 것입니다.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 이런 일이 나타난 경우를 선천적으로 그것을 가지고 태어났다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태어나는 과정이나 태어난 후에 만들어진 신체의 구조에 의해서 그것이 나타난 경우를 후천적인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설명합니다. 알고 보면 전부 법칙입니다. 어떤 일과 어떤 일의 결합에 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불법이란 어떤 것을 두고 말할까요? 어떤 물질과 어떤 물질이 결합하게 되면 하나의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 현상을 두고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같은 두 물질의 결합에 있어서도 각각의 양나 성질에 따라 다른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이것 또한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진실이나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도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불법은 과학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 문명 속의 일들 이외에는 아직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연을 통해서 좋은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도 또한 또 하나의 불법입니다. 어떤 과정 속에 있었던 일로 인해서 어떤 일이 나타나게 되는 현상을 두고 법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일본에서 온 한 유명한 박사의 강의를 들으러 롯데 호텔에 갔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변박사가 통역을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었습니다. 들어보니까 과정에 있는 일은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유명하다고 하는데 과정 속에 있는 일들은 전혀 설명이 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어떤 물질을 이용해서 환경을 정화시킨다고 설명했는데, 그 물질은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과정으로 그 물질이 환경을 정화시키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습니다. 장장 3시간의 이야기 중에 조물주도 팔고 부처도 팔고 부처의 제자도 팔면서 온갖 소리를 했는데 전부다 원칙에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명한 어떤 현상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내용을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불법이라는 용어는 부처님의 전용어가 아니고 세상의 일을 존재하게 하는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은 불법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경우에서는 법칙이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즉 한 물질이 다른 한 물질과 어떤 인연에 의해서 결합되어서 새로운 현상이 발생될 때 그것은 특정한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스스로를 좋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자신의 의식에 대한 공부를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는 의식개혁운동을 계속해서 주창하고 있지만 그 일이 잘 안되는 이유는 실제적으로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내가 좀 많이 알고,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그나마 여기에 와서 들어서 조금 아는 편인데 나머지 사람들은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는 목적이 바로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이 시간을 통해서 반복하는 말은 한번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되는 일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계속적인 활동을 통해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자꾸 드러내고자 합니다. 예를들어 바닷가에 가서 고등어를 잡는 일도 산을 무너뜨리는 일도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고자 하는 행동들입니다. 


 한번 존재하게 된 것은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자신처럼 우리 자신 속에 존재하는 것들도 모두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의해서 의식체를 가지게 됩니다. 즉 의식은 어떤 일을 만날 때 그 일로 인하여 새롭게 변화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의식 속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체들은 어떤 일들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저는 다음 주부터 ‘운명’에 대해서 몇 차례 설명을 할 계획입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은 수학의 공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이 시간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일은 세상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짐으로써 세상에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그런 문제들이 어떠한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해결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통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신뢰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세상 어느 곳에서도 법칙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과학자들은 문제에 공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식은 자연계의 법칙에 한해서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 현상을 통해서 의식을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지만 이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자신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계속적인 활동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서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깨닫게 되면 거짓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것에 비해서 우리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적은 이유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잘 어울리는 역사 속의 한 인물인 노자의 의미깊은 말이 있습니다.


 ‘하인은 진리를 들으면 비웃거나 성을 내고, 중인은 반신반의하고 상인은 기뻐한다.’


 이 시대에서 과연 상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잘 모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일을 두고 사람들이 그에게 야유를 하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진리에 눈먼 미래의 제자가 죽은 아버지의 초상을 끝내고 따라가겠다는 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한테 맡기고, 살 자는 산 자를 따라가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중생은 눈뜬장님과 같다.’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일을 보아도 그 일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눈뜬장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위의 내용들은 교과서에 나와있어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그 내용들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법칙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고 들어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인간이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 의해서나 자신에게 있었던 일의 힘이나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자신 속에 없는 일들을 만나면 그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진리가 널리 전해지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업을 버리지 못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종교인들이나 철학자들이 이런 일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게 봐서는 안됩니다.


 에- 최근 제가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많은 일들을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물은 독이 되고, 사슴이 마시면 물은 녹용이 된다는 진실이 다음의 경우에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업을 가진 자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공부를 하면 그 공부는 독으로 변합니다. 그 사람 속에서 그 공부가 변질이 되어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 독사가 마신 물이 왜 독으로 변합니까? 독사가 가진 장기들에 의해서 물이 독으로 변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마신 물이 왜 물이 녹용이 됩니까? 사슴의 몸 속의 장기들에 의해서 물의 성질이 변화하여 녹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것이라도 그것을 누가 가졌느냐에 따라서 보물이 될 수도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 마주치게 되는 질문들 중의 하나는 왜 사람들이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운가 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좋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을 받아들이는 일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떠돌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고 강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그리고 진리. 진리에 대한 말과 사랑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합니다. 진리란 현상계(현상이 존재하는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법칙이고 사랑이란 어떤 대상을 축복하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축복된 일을 할 때 그것은 그 대상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사랑에 대해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현실에서 사랑은 어떤 축복이 아니라 남녀 사이의 연애를 두고 사용됩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예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으로 세상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어야 되겠지요.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제가 몇 년 전에 헝가리에 갔을 때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이드라는 철학자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사랑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가르쳐왔느냐? 넌 참 똑똑한데”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자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사랑은 ‘양심’과 ‘정의’를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양심은 마음을 밝히는 길이고 정의는 세상을 밝히는 길이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한다. 밝은 마음을 가지고 밝은 세상에 산다면 인간의 삶에서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느냐?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여러분,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빵을 주고 돈을 주면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그렇게 큰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시를 위한 행위입니다. 자신이 남보다도 동정심이 많고 인간애가 크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그런 행동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속거나 피해를 입게 되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착한 사람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정직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내막을 보면 너무나 사악하고 무서운 이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축복이 발생했을 때 그 축복을 준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어디서 보아야 할까요? 바로 결과에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축복이 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실패한 사랑입니다. 노력해서 잘못된 현상 즉, 잘못된 현실을 있게 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사랑이 됩니다.


 이 나라에서는 실패한 사랑이나 잘못된 사랑은 많아도 진정한 사랑은 보기가 힘듭니다. 세상이 어두워서 시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장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학교수들이나 석학들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를 보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일본 사람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는 양조장을 운영하다가 어떤 신이 붙었는지 미생물을 이용한 정화법을 개발했다고 했습니다.술을 양조하기 위해서는 미생물을 번식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경대 농업대학을 나와서 세계적인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전화법의 설명에서 양자나 분자가 왜 필요합니까? 그는 양자가 어떻고, 수소가 어떻고, 분자가 어떻고 하면서 한참 동안 설명을 했습니다. 미생물을 연구하는 데는 양자나 분자나 수소나 이런 게 별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엉뚱한 소리를 세 시간이나 떠들고 있었는데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일찍 와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나는 답답해서 가만히 앉아 들을 수가 없어서 여러번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여러분들이 들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최고고 우리는 그렇지 않느냐’ 고 나에게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있는 일을 두고 설명할 때 항상 원칙에 입각합니다. 여기서 원칙이란 수학의 공식과 같습니다. 공식에 의해서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즉 그들의 말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만일 어떤 말에 공식이 없다면 그 말은 이상(理想)이 됩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꿈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이상(理想)이고,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이상에서가 아니고 현실에서 무언가를 실제로 얻을 수 있는 말은 현실적인 철학이 됩니다. 현실을 밝히면 현실 철학입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철학은 모두 이상철학입니다. 이상철학에서 이상적인 것들을 가르칠 때는 공식이 필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실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말의 진실성에 대한 확인이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이 현실에서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말에는 공식이 필요 없습니다.


 사실 공식에 대한 일들을 알게 되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실수하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행을 많이 합니다. 다가오는 1월 달에 캠브리지나 임페리얼, 옥스퍼드 3개 대학에서 강연을 한번 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2월이나 3월에는 동경대학, 와세다, 게오 대학에 가서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인류를 존재하게 하고 있는 일이나 그러한 일을 일어나게 하는 법칙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주제들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할 때 그들은 많은 책을 읽습니다. 많은 책을 읽어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연습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전혀 읽지 않습니다. 어떻게 책을 읽고 세상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단지 세상을 보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와 다른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15일전에 인도에 있는 IIT 대학에서 meeting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교수들보다도 오히려 학생들이 더 정신이 맑았어요. 교수들은 진리적인 말을 듣고 꾸벅꾸벅 졸았는데 학생들은 눈을 초롱초롱 뜨고서는 질문을 하면서 들으려고 했습니다.


 인도의 IIT 대학이 잘 알려진 곳이 아닌 줄 알았는데 엊그제 한 한국의 신문에 인도의 IIT 대학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IIT대학은 미국의 최첨단 설비와 최고 수준의 교수진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자랑하는 MIT 공대에 버금가는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매년 졸업생의 약 300명 정도는 미국에서 취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가니까 들을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 그런 분 왔다면 당장 미팅을 해야 되지.” 이렇게 meeting이 주선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수라고 해서 많이 알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있는 일을 보지 못하면 공식의 이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숫자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숫자를 알고 공식을 알면 문제를 알아볼 수 있고 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진리적인 해답이란 존재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데, 이런 일을 두고 우리는 진리적인 가르침 혹은 진리적인 해답이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어떻게 공부도 하지 않고 수 많은 일들을 틀리지 않고 원칙에 맞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제가 숫자를 알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치에 놓고 보면 해답은 나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눈에는 제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내 말이 틀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예외적인 일들을 보고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원칙을 벗어나서 존재하게 되는 일들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힘의 논리란 사회적 환경을 지배하는 세력은 거짓말도 진짜처럼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칙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일들은 항상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경우에 따라서 사람들과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알면 공식만으로 세상의 미래와 과거와 현재와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럼 무지는 무엇일까요?


 지난 일요일날 제가 돌아와서 여기서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 아는 게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 여자분은 원칙이 없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칙이 없는 공부를 하면 온 세상을 뒤엎는 공사도 할 수 있습니다. 입만 가지고서는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고 옥황상제가 됐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理想)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하늘에 가서 하느님이 될 수 있는 사람이면 지상에 있을 때는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하하하 아니 어찌 하느님이 인간 세상에 와서 비실거리다가 갔는가 말입니다. 종자가 좋아야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만 나타나도 일반 사람들보다는 뛰어난 힘과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신과 인간 세계에서 최고가 되는 존재가 어떻게 비실거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상(理想) 속에서는 개미를 가지고 용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용이 닭한테 물려서 죽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닭이 표범을 물어 죽일 수는 없습니다.


 현실 속에서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 속에서는 현실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구요?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알게 되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현실 사회에 있는 것을 배우고 그 배운 것을 깨닫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여러분들 중에서 죽어서 지옥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지옥이 있느냐? 있습니다. 난 지옥을 만날 봅니다.


 좀 전에 언급했던 부부는 이상한 종교계통에 다닌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적인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신은 신의 세계에 살게 하고, 인간은 인간의 세계에 살아야 합니다.


 옛부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자꾸 괴롭히니까 산 자가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왜 저녁마다 제사를 지내고 죽은 자들을 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종교계통에 가면 조상신을 천도하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종교에서 조상을 위한 천도제를 지내어주고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다.


 윤회라는 말을 여러분은 알고 있죠? 윤회라는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지하고 애착이 큰 자들만이 윤회를 하지 않고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온갖 고통을 인간에게 주고 자기도 고통스러워합니다. 그 무지한 귀신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습니까? 20대 중반의 연극 배우가 무대에서 수염을 달고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말을 타고 거란의 병사들 앞으로 전진을 한다 해서 그 사람이 강감찬은 아닙니다. 강감찬의 모습을 했을 뿐입니다.


 귀신이 여러분의 조상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왔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조상신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것 참 이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조상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런 조상 필요 없습니다. 왜? 자손을 괴롭히는 조상은 필요없으니까 당신들이나 천도제 지내 우리는 안하겠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죽어도 안하겠다 것입니다. 조상이 그렇게 후손이나 괴롭히려고 한다면 그런 조상은 죽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들이 현실에서 속지 않는 공부, 현실에서 자신을 깨워 줄 공부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번 신에게 붙잡히면 그 사람은 항상 그 신의 조정을 받고 삽니다. 사실상 본인도 행복할 수 없고 가정도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떤 실수를 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났었던 수 많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영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영체 속에서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일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의 힘이 강하면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쁜 힘이 강하면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운이 어두우면 밝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운이 밝으면 어두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둠은 빛이 있는 곳으로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은 빛과 부딪치면 깨져서 죽기 때문입니다. 빛은 어둠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둠에 갇히면 죽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 속에도 이런 성질이 존재합니다.


 제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제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이런 일이 매우 쉬워졌습니다. 우리집에서는 제사를 지낸다든가 신에게 기도를 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들한테도 그런 무지한 일은 못하게 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못봤을 것입니다. 일을 하면 현장에 딱 붙어 있습니다. 일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 다방에 가서 놀다오시지요. 우리가 일 잘 해 놓겠습니다. 사장님이 딱 붙어 있으면...”


 “보소!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없으면 당신들 허리 아프면 허리 펴서 조금 있다가 일하고. 이렇게 하다보면 시간 다 가버려서 손해를 보게 되는데.”


 그래서 내가 옆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일할 때 일을 조금 느리게 해도 안전하게 하라고 강조를 합니다.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항상.


 에- 모든 길은 현실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어떠한 일도 존재합니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일들은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합니다. 수학에서 숫자를 알면 숫자들을 이용해서 무한히 많은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리도 이와 같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다른 것과 결합을 하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또 다른 새로운 물질을 만들면 거기에서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이러다 보면 우리는 새로운 물질과 현상을 만들다가 늙어 죽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들 중에서 일부분만 알고 죽습니다. 그 일부분만 알고 죽더라도 즉 세상의 일을 있게 하는 일 속에 존재하는 원리의 일부분만 알고 죽더라도 불쌍한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피할 수 있습니다. 윤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영생의 세계나 4차원 세계 즉 최고의 차원의 세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왜 세상에는 온갖 현상들이 존재할까요? 바로 우리 세상에는 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법 속에서는 온갖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연입니다.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은 존재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여기서 배워야 합니까? 그것은 좋은 인연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배우고 깨달고 좋은 인연을 짓고 여러분의 끝없이 밝은 앞날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끝없이 밝은 미래를 존재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을 이해함으로써 좋은 인연을 맞이할 수 있기 위해서 이곳에 와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좀 받겠습니다. 내가 혼자서 장시간 말을 하다보면 머리가 아픈 사람도 생기고 하니까. 20 분 정도 말하고 질문을 받으려고 했는데 하다가 보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갔어.


질문: “제가 먼저 질문을 할께요. 이 질문은 MIT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보낸 질문입니다. 그때 여래 님께서 대답을 다 못하셔서 제가 법회시간에 질문한다고 했거든요. 첫 번째 질문은 진리와 사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입니다.”


 그 참 좋은 질문인데 모를 때 그런 질문을 하지. 진리와 사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사실 속에 진리가 있고, 진리 속에 사실이 있다. 아내와 마누라와 같은 말이다. 이것들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동질성. 같은 것이다. 사실에서 진리를 볼 수 있고, 진리 속에서 사실을 볼 수 있다. 진리를 통해서 사실이 입증되고, 사실들의 관계를 통해서 진리를 볼 수 있다. 이런 설명은 본인 앞에서 직접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데 글을 통해서 전해들으면 설명의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다.


 질문: 신과 정신의 정의를 알려주십시오.


 그 사람들 참 질문을 어렵게 해. 신의 뿌리는 정신이고, 정신의 결정체는 신이다. 그렇지 않아? 우리의 의식 활동을 통해서 정신이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정신은 신이 되니까 신의 뿌리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도 사실과 진리의 경우처럼 서로 연결된 동질성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질문: “질문이 좀 많은데.”


 많아도 다 물어. 다른 사람들도 묻고. 여러분들은 있는 일을 통해서 배워야 됩니다.


 참석자: 질문 좀 하나 하겠습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지옥이 있다고 하셨는데 지옥이 있다고 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 겪는 나쁜 일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은 소위 말하는 사후의 지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 사람들, 거짓말만 하면서 산 사람들, 그리고 흉악한 범죄자들 등의 사람들은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사람들의 의지가 허약할 때 잘못된 일들을 많이 합니다. 의지가 허약한 사람들은 죽으면 환상에 붙잡혀 있게 됩니다. 환상이란 온갖 뱀으로 가득찬 소굴에 빠져 있다든가 불구덩이 속에 빠져 있다든가하는 현상을 보게 되는 일을 말합니다. 저는 지옥에 가보지 않아서 지옥은 잘 모르는데, 하하하하하. 나는 극락세계에서만 있어서 지옥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 이런 환상의 세계가 존재하는 한편, 신의 세계라는 게 존재합니다. 나는 언젠가 한 번 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일 때문에 신들과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들의 세계를 본적이 있어요. 그것은 인간의 세계와 똑 같습니다.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강자가 약자를 통제하는 식의 명령 체계가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 신의 세계는 몇가지로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탈해서 떠돌아다니는 것도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고통과 애착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런 지옥계를 거친 영혼들은 대부분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인간의 세계로 되돌아올 수 있는데, 자신 속에 깨달음의 원인이 없으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쉽게 깨달아 진다면 이 세상에 왜 깨달은 자가 안 나타나겠습니까? 쉽게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옥을 거치는 영혼들은 인간으로의 환생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존재하는가? 어떤 기운은 세상을 떠돌다가 어떤 물질과 혼합되어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 기운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한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힘이 상실되었을 때 그 기운은 인간계 이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동물의 세계로 떨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통해서 좋은 의식을 얻은 사람들은 100% 다 인간계로 돌아옵니다.


 질문: 사람들의 근본은 각자 다르다고 하셨는데요. 여러 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근본이 다르게 태어나는 겁니까?”


 내가 어떤 물질이 창조되는 과정을 보니까 세상의 활동에 의해서 기운이 어떤 물질과 부딪쳐서 결합하게 되면 그 결합물이 생명체로 태어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그 근본은 그 현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있던 요인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만 그 기운과 물질 자체 속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이 계속 자신 속에서 활동을 하게 되고, 그 활동에 의해서 다신 자신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같은 궤도를 계속 돌게 됩니다.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을 때 궤도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인연이 있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서 듣게 되고, 그것들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이곳을 다시 찾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여러분들에게도 깨달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일단 깨닫게 되면 계속해서 여러분들을 조종해 왔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이클을 스스로 조종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것에 의해서 명령을 받는 게 아니고 깨어난 여러분의 의식이 사이클을 통제하기 때문에 그 때부터는 여러분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억누를 수가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큰 변화를 계속해서 겪게 됩니다.


 업을 잠재우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서 그 새로운 것이 큰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새로운 일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업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활동은 살아 있을 때 즉 생명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생명활동을 통해서만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생명이 없으면 절대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질문: MIT 대학 한 사람의 질문입니다. 죽음 후에는 어떤 세계가 존재합니까?


 죽음 후에는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의 4개의 차원이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서 설정된 차원들과 다른 세상에서 설정된 차원들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설정의 기준이 어떠하였는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1차원이란 깨달음이 없이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 윤회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애착이나 한에 묶여서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몸에 붙든가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죽은 후에 잠깐은 매우 편안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몸이 땅에 묻히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쌓아놓은 물질이나 누렸던 호화로운 삶 속의 일들에 대한 애착으로 세상에 붙잡혀 있게 됩니다.


 2차원이란 죽음과 동시에 자신의 모든 의식이 사라지면서 다시 태어나는 일을 말합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3차원이란 고요한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한 상태에서 몇백 년을 머물 수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영생의 세계라고도 합니다.


 4차원이란 살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런 고통과 애착이 없는 상태로 머물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공부도 하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세계를 두고 말합니다. 그곳은  깨달음이나 열반을 이루어서 애착이나 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주 깨끗한 마음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혜가 뛰어난 신들이 존재합니다.


 인도를 여행할 때 많이 한 말입니다만 제가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저의 아내는 탈기가 되어 5년넘게 한숨만 쉬면서 자주 이런 말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남자가 왜 저리 되었을고?”

 그리고 나를 우상처럼 여기면서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니까 극락 세계로 가는 길은 오직 나 혼자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 위에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습니다.


 하도 외로워서 사람들을 깨우쳐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세종로 사거리 지하도에 앉아 있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나를 피해서 가는 겁니다. 오는 사람들이라고는 구청 단속반이었습니다.


 “당신 여기서 뭐하느냐?”


 “여기서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한다.”


 그렇게 말하니 여기서는 안되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몇 군데로 옮겨 보았지만 다들 자기네 구역에서는 안된다고 내쫓았습니다. 파고다 공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닙니까? 그래서 거기에 자리를 깔고 모른 척 하고 앉아 있으면 그 많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것입니다. 혼자서 먼지만 마시면서 먼산만 쳐다봐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좋은 길을 같이 가자고 하니까 그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것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듭니까? 한 번 좋은 것을 얻으면 그것은 자신 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얻을 때까지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누구도 업을 피해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은 업 때문에 세상과 부딪치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부딪치면 자신이 깨어지니까 그것이 싫어서 부딪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을 깨우치기 위해서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나만 맨날 깨지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산 속에 있는 중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한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옷도 괜찮게 입고 해서 혹시 돈깨나 가져왔다고 생각했는지 한 승려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초대하고서는 떡이랑 과일을 대접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떡으로 나가려는 손을 참으며 그 승려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여기 공부하는 스님이 있으면 한 분 소개해주세요.”

 “왜 그러는데요?”

 “제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몇 마디 전할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중은 두 말도 하지 않고 상을 들더니 횡하니 나가려고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상을 들고 나가길래 급히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모두가 바빠서 당신같은 사람의 말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상을 들고 나가버렸습니다. 좋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 정도로 드물었습니다.


 최근 태국을 방문해서 확인한 사실입니다만, 한국 불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외국 불교의 대부분은 귀신 불교였습니다. 귀신을 섬기면서 부처는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었고 진정한 부처는 없었습니다. 부처는 상품이고 그 곳들의 모든 가르침은 귀신들이 하는 소리였습니다. 만약 부처가 가르쳤다면 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귀신의 헛소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무지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자,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참석자 : “책을 읽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요. 책을 읽으면 업을 쌓는 것입니까?”


 책을 읽는 행동이 업을 짓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책을 보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을 만들고 사슴이 물을 먹으면 녹용을 만드는 한편,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편과 같은 마약은 처음 맞을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두 번째 맞으면 힘이 벌떡 벌떡 납니다. 그렇게 자꾸 맞다가 중독이 되면 아편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때부터는 몸과 정신이 상해서 인간 사회에서 뒤떨어진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보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먹기가 싫습니다. 보약은 자꾸 먹으면 질려서 먹기가 싫습니다. 차이는 이것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책을 보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말이나 귀신의 가르침과 같은 것을 보았다면 여러분들에게 마이너스가 되었을 것이고 농사짓는 법이나 어떤 생활에 필요한 기술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는 책을 읽었다면 여러분의 삶에 아무런  마이너스가 되지 않습니다. 좋지요.


 예를들어 자동차의 정비에 관한 책을 보았다면 자동차에 이상 현상이 생겼을 때 조치를 취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홍길동의 신출귀몰한 모습들을 적어놓은 책은 아무리 읽어도 그렇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책들을 읽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홍길동이 날아가서 탐관오리의 목을 쳐버리는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을 아무리 읽어도 자신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자연의 가르침’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 달에 300만원 적자 봅니다. 하지만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자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출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책을 대충 읽으면 그저 그렇게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다릅니다.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합니다. 어떻게 어떤 일이 생겨났다거나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했다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사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의식 속에 넣고 다니면 거짓에 잘 속지 않습니다. 남에게 속지 않는 것도 복입니다. 그래서 그 책이 좋다는 것입니다. 사실 관계가 애매한 글들은 인간 사회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의식 개혁을 하겠습니까? 어떤 사실 관계를 통해서 사람을 일깨워주어야 의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만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들어 ‘기’나 ‘단’게 관한 책이나 어떤 주문을 외우니까 머리가 깨어지면서 깨달았다는 내용을 담은 책들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귀신한테 붙잡혀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나한테도 찾아와서 귀신을 없애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귀신이 한 번 붙어놓으면 잘 안떨어질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못된 책을 읽고 그 책 속의 내용을 함부로 따라했다가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해 드립니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떤 포즈를 취하고 어떤 주문을 읽으면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면서 몸 속에 신이 들어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책은 읽지 마십시오. 현실적인 책 즉 현실 속의 문제들을 밝힌 책은 좋은 책이지만, 도나 이상한 내용을 담은 책은 읽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책을 살 때 종교 계통이나 이상한 단체에서 만들어 책들은 경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책을 한 번 보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압니다. 귀신이 썼는가 사람이 썼는가를 바로 압니다. 사람이 썼다면 현실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반해서 귀신이 썼다면 현실에서 벗어난 내용이 있습니다. 이상 속으로 인간을 끌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쓴 책은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책은 사람을 밝은 곳으로 끌고 나옵니다. 기술 서적이나 그와 유사한 책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만 철학이나 ‘도’나 ‘기’ 등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경고합니다.


 그제 저녁인가, 그 전날 저녁인가 어떤 일본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한 달 동안 물도 안 마시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체중이 줄지 않습니다.”


 오줌을 누거나 땀을 흘리는 것처럼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 체중이 떨어지게 되어있는데 한 달 동안 체중이 줄지않는다고 하니 기절초풍하겠더라구요. 혹시 한달 동안 냉동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면 가능한 일이겠습니다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기’를 마시면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좀 가르쳐주면 좋겠네요. 그것만 가르쳐 주면 앞으로 식량부족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음식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잖아요. 일할 필요도 없습니다.


 소위 박사라는 놈이 그런 말을 하는데 무지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심지어 시청의 국장이나 시의회 의장 하던 사람도 와서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누군가가 상식에서 벗어난 말을 할 때에는 검증을 해야 합니다. 국가 기관 등에서 검증을 거친 것이냐고 확인을 하면 그 사람의 대답은 달라질 것입니다.


 내가 처음 깨달음을 얻고 서울에 갔더니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당신도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하고 합칩시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일을 합니까?”


 “아! 우리는 증자 산자 쓰시는 강증산 선사께서”


 “그 강증산 선사가 뭐하는 사람입니까?”


 “선사께서는 살아서 천지공사를 하셨습니다”.


 “어떻게 천지공사를 했습니까?” 


 “선사께서는 태양을 한나절 동안 잡고 있었습니다.”


 “야 이 사람아 일 초 동안만이라도 지구의 자전이 멈추면 온 세상에 난리가 난다. 나보다 훨씬 낫다. 난 손목 시계의 바늘 조차 일 초 동안도 멈추게 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은 태양을 반나절이나 그 멈추게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그 일을 확인한 사람들은 있었나?”


 “있습니다.”


 “누구냐?”

 

 “많은 사람들이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누구냐? 백년 전에도 동경 천문대가 있으니까 그곳에서 확인했다는 증거가 있느냐? 조선시대의 어떤 고을 관리가 그 사실에 대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중국 천문학자가 보았느냐? 영국에서 보았느냐?”


 태양은 하나뿐이니까 태양이 한나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면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것입니다. 아무리 역사책을 보아도 태양이 한나절 동안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없습니다. 이상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봤냐? 당신들 그 ‘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본 것이지? 그 사람들 입에서 나왔지?”


 “그렇습니다.”


 “아 이 사람들아! 당신들의 꿈 이야기를 나한테는 하지마라. 나는 현실을 밝히는 사람인데 당신 꿈까지 밝히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렇게 말하고 대화를 끝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말을 듣고도 속는 사람이 이 나라에는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난 일은 믿지 말아라.’ 이 말이 정답입니다. 세상은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정확하게 물어야 합니다. 수학에서처럼 문제를 정확하게 물어봐야 하고 해답도 어떤 문제로부터 나온 것인지 정확하게 물어야 합니다. 해답을 알고 있다면 그 과정 속에 있는 일도 알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해보라고 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런 일들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은 장난하는 것입니까? 당신도 모르는 소리를 나한테 와서 하다니 도대체 날 어떻게 보는겁니까?”


 이런 식으로 따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누군가가 원칙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할 때는 믿지 마십시오.’


 질문? 일월 중순까지는 아무데도 안가고 여기 있을 것입니다. 아직 시간이 여러 주 남았으니까 질문할 것 많이 좀 만들어 오세요.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편 집 부

 

자연의 가르침은 있는 일에 대한 실상을 밝히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세상의 실상을 아는 일은 왜 일생을 바쳐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역사 속에서 석가모니는 일반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법(法)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오늘날에 와서 이 말은 석가모니를 내세우고 있는 종교인 불교를 통해서 불법(佛法)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과연 이 불법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확인을 하면서 이러한 일을 있게 하는 세상의 일들을 설명하겠다.

불법이란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 내는 공식을 말한다. 이 공식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 우리가 수학을 알기 전에 가장 먼저 숫자를 알아야 한다.

숫자를 알아야만 수학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고 풀 수가 있다. 숫자를 모르는 상태라면 수학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수학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문제에서 앞에 있는 문제와 뒤에 있는 문제가 공식에 의해서 존재하게 될 때 이 공식을 법(法)이라고 말한다.

오늘날까지 인간 사회에 수많은 문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항상 수학의 공식이 적용되었고 큰 기여를 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수학에서의 공식과 마찬가지로 현상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들을 법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이런 일이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로써 현상계 자체를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 법칙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원적인 문제를 이해해야 될 것이다.

그러면 근원적인 문제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세상의 일을 있게 만드는 원인을 우리는 근원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만물이 소생하고 온갖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의 근원은 무엇인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를 이해할 수 있어야만 '아! 이런 것이 법이구나!', '이것이 바로 불법이구나!' 하고 이해가 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으니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보편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을 소우주라고 말들을 한다. 소우주라는 것은 인간 자체가 하나의 구조역학에 의해서 하나의 생명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몸 속에는 여러 기관을 갖고 있는데 이를 구조라고 한다. 이 기관들을 이용해서 사고(思考)를 일으키고 감정을 갖게 되고 움직이게 되는 일들이 인간 자체 내에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를 소우주라고 말한다.

세상 자체도 알고 보면 하나의 구조역학에 의해서 짜여져 있다.

모든 것들은 똑같은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우주도 존재하고 지구도 존재하고 인간도 존재하고 또 모든 현상계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역학. 즉 구조의 활동에 의해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이것은 세상에 힘을 존재하게 하고, 세상은 그 힘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하나의 동력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처럼 세상도 그 구조가 가지고 있는 활동에 의해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이 세상이 움직이는 동안에 거기에 있는 온갖 물질과 기운이 혼합되게 되면 거기에서는 또 다른 온갖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속에는 수학의 공식처럼 하나의 공식· 법칙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생명체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다른 힘에 의해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그 속에 있는 법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산모가 기형아를 낳았다면, 이것은 산모가 아이를 잉태하는 과정에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고, 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남으로써 의식활동의 부족 즉 사물을 보는 이해의 능력이 뒤떨어지는 기형적인 정신박약자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정신박약자를 보면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신체 기관에 이상이 있는 경우인데 이를 후천적인 정신박약자라 하고, 다른 하나는 신체 기관에 이상이 없는 경우인데 이를 선천적인 정신박약자라고 한다.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다시 설명하자면, 선천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자기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고,

후천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태어나는 과정이나 태어나고 나서 자기의 신체 구조에 의해서 나타나게 된 것을 후천적인 과정에 의해서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법칙이다.

 

불법(佛法)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어떤 물질과 어떤 물질이 결합했을 때 거기에는 하나의 현상이 존재하게 된다. 이 현상을 보고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 현상은 어떤 물질과 어떤 물질의 수치(數値)나 성질(性質)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으니 이를 불법이라고 말한다.

불법이란, 있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법에 대해 인간의 문명인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과학적 지식으로는 인간 자체나 세상의 일을 있게 하는 일들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 왔던 물질 문명 속에 있는 것 외에는 이해할 수 없다.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들이 어떤 인연을 통해서 좋은 것을 얻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것도 하나의 법이다. 하나의 과정 속에 있던 일로 인해서 어떤 일이 나타나게 되었다면 그것을 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법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역사상 석가모니가 가장 많이 밝혔기 때문에 불법(부처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이라고 한다 해서 그것이 석가모니 부처의 전용어이거나 특정의 종교계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불법이란 세상의 일을 있게 하는 현상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법을 설명할 때, '자연적인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가 하나의 현상에 대해 가르친 것은 불법이라고 한 것이고, 그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자연계를 설명할 때는,

세상은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한다. 어떤 물질이 어떤 물질과 어떤 인연에 의해서 결합되어서 새로운 현상이 있게 된 것은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할 수가 있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자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의식(意識)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하겠다.

한국 정부에서 내세우기를 의식개혁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처럼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의식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의식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인간은 이 세상의 부산물이다.

인간들은 세상에 살면서 항상 자기의 영향을 나타내려고 한다.

예를 들자면 바닷가에 가서 고등어를 잡는 것도 인간의 영향을 나타내는 것이고, 산을 허물어 버리는 일도 거기에 인간의 영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번 존재하게 된 일은 쉽사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활동을 통해서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우리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된 것들은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각각 하나의 자기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자기라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의식은 어떤 일을 만나서 그 영향을 받게 되면 거기에서 새로운 의식이 만들어진다.

인간은 수천만 개의 있는 일에 의해서 하나의 의식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의식 속에는 또 수천만 개의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체들은 어떤 일과 어떤 인연이 있을 때마다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수천만 개의 생명체들의 활동에 의해서 새로운 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자기와 자기의 인연 속에 있던 일로 인해서 자기의 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 일을 말한다. 이것들은 인간의 생명 활동에서 계속적으로 자기의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모든 법칙은 수학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어떠한 과정에 의해서 풀어지고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을 아는 일이다.

우리는 자기에 의해서 자기를 통제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법칙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단지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만 하나의 문제에 공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자연계의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색깔을 만들어내고 물질을 만들어내고 또 물질이 갖는 성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계를 통해서 자기의 의식을 더 좋아지게 하는 법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누구든지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깨닫기 전에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깨닫게 되면 거짓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 속에 있었던 성인들의 말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노자는 말하기를,

"하인(下人)은 진리를 들으면 비웃거나 성을 내고, 중인(中人)은 반신반의하고, 상인(上人)은 기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상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만나기가 어렵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보고 야유를 하자 말하기를,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라고 충고한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진리에 눈멀어 있는 것을 보고 가르치려고 하니,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례를 치르고 따라가겠다."해서

"죽은 자는 죽은 자한테 맡겨라."고 말했다.

그래서 살 자는 산 자를 따라가야 된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리고 부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일반 사람들은 눈뜬장님과 같다."

사람들은 있는 일을 보아도, 있는 일이 왜 그렇게 있게 되는지를 아무도 모르니까 눈 뜬 장님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는 잘 외운다.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이렇게 많은 내용들을 밤낮으로 읽고 머리 속에 집어 넣는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법칙 속에 있는 일들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도 않거니와 듣고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그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는데 자기 속에 없는 것이 나타나면 누구든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의 세계에 진리적인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업을 지고 있기 때문이며, 진리를 버리고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많은 종교학자나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독사에게 물을 주면 독이 되고, 사슴이 물을 먹으면 녹용이 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큰 업을 가진 사람이 깨닫지 못한 채 좋은 공부를 하게 되면 그것은 독으로 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자기 속에서 변질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물이 왜 독으로 변하는가? 독사가 먹었기 때문에 독사 몸 속의 기관을 통해서 물이 독으로 변한 것이다. 왜 물이 녹용이 되는가? 사슴이 먹으니까 사슴 몸 속의 기관에서 변해 녹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똑 같은 것을 누가 가졌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보물이 될 수도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좋은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좋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좋은 일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가장 많이 언급하는 내용은 사랑과 진리이다.

'사랑' 그리고 '진리'

진리란 현상계를 있게 하는 법칙을 말하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축복을 말하는 것이다.

유럽의 헝가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인 보이드를 만났을 때,

"너는 사랑을 어떻게 배웠으며 어떻게 가르쳐 왔느냐?"라고 묻자

보이드는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철학자는 사랑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이다.

 

자연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사랑은 항상 사람들에게 양심(良心)과 정의(正義)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심은 마음을 밝히는 길이고, 정의는 세상을 밝히는 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밝은 마음을 가지고 밝은 세상에 산다면 인간의 삶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빵을 주고 돈을 주고 먹여 살리는 것은 큰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신 행위일 뿐이다. 자기가 동정심이 많고 인간애가 많다는 것을 과신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하다가 경우가 달라지면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가장 많이 속이고, 많은 피해를 입히는 대상을 분류해 보면 그것은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항상 착한 사람처럼 미소를 짓고, 항상 정직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너무나 사악하고 무서운 내막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나 대상에게 축복이 되었을 때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축복은 어디에서 보아야 하는가? 결과에서 보아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는 '실패한 사랑'이며, 아무리 노력했지만 잘못된 현실을 있게 했을 때는 '잘못된 사랑'이다.

세상에서는 실패한 사랑이나 잘못된 사랑은 많아도 진정한 사랑은 보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어둡고, 그 세상에서는 항상 시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좋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연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대학교수나 석학일지라도 자연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읽거나 듣거나 보아야 할 어떠한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자연의 가르침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이다.

세상의 있는 일을 설명하는 내용을 읽다 보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항상 하나의 원칙에 따라서 말하고 있으며, 이 원칙이란 수학의 공식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의 공식에 의해서 세상의 있는 일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식을 빼거나 무시해버리면 그것은 이상(理想)이 된다. 이상이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꿈 속에 있는 것은 이상이고,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진실이다.

현실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현실 철학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서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이상적인 철학을 하고 있다.

이상철학에서 이상적인 걸 가르칠 때는 하나의 공식이라는 것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실이라는 것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상철학에서는 진실성 확인이라는 것이 필요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것이 이루어질지 않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의 생각과 이론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공식은 필요없는 것이고, 만약 공식을 알게 된다면 이상적인 말을 하거나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진리는 정신적인 바탕이 좋고, 정신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을 진리적인 가르침이라 하고 진리적인 해답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일을 보지 못한다면 이러한 공식·법칙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숫자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숫자를 알고 그 공식만 알면 누구든지 그 숫자가 갖고 있는 문제를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공식을 이해하면 누구든지 이 문제는 풀어낼 수 있게 된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는 하나의 원칙을 벗어나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힘의 논리라는 것은 어떤 사회적 환경 또는 그 환경을 지배하는 쪽에서 거짓도 진짜처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원칙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일들은 항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문제는 경우에 따라서 사람들과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다 줄 수도 있다.

세상이라는 것은 현실을 알게 되면 하나의 공식만으로 미래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는 현실을 알아야 하고 현실을 배워야 한다.

이 현실 속에 있는 일들을 배우고 깨닫게 되면 자기 속의 모든 문제를 푸는 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신은 신의 세계에 살게 하고, 인간은 인간의 세계에 살아야 한다.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자꾸 괴롭히니까 산 자는 괴로움에 빠지게 되는데 왜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거나 죽은 자들을 청하는지 알 수 없다.

무지하고 애착이 너무 커서 윤회하지 못한 영혼들이 인간에게 붙어서 온갖 고통을 안겨주고 그 귀신도 고통받는데, 이 무지한 귀신이 자기 조상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죽은 영혼이 조상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자기의 조상신이라고 믿을 것인가? 오히려 그것은 자기 조상에 대한 모욕이 될 뿐이다.

한 번 신(죽은 영혼)과 접촉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항상 그 신의 조종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건강할 수 없고, 가정이 화목할 수 없고, 가정이 평화스러울 수 없으니 결국 자기가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이다.

의식은 내 속에 있는 수천만 개의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하나의 영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영체는 속에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계속하게 된다. 즉 같은 성질은 받아들이고 다른 성질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기운이 어두우면 밝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운이 밝으면 어두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나쁜 힘이 강하면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힘이 강하면 나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둠은 빛이 있는 곳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빛에게 부딪쳐서 깨지면 죽기 때문이다.

빛은 어둠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어둠에 갇히면 빛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의식 속에도 같은 성질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길은 현실에 있다. 세상에는 어떠한 것도 다 존재한다. 다만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숫자를 알면 이 숫자를 가지고 수억만 개의 문제를 만들어도 다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도 이와 같다.

있는 일을 가져다가 다른 것과 결합을 하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또 어떤 물질을 만들어 보면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이러다 보면 사람들은 늙어서 죽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작은 일부분만 알고 죽게 되더라도, 세상의 일을 있게 하는 일의 그 일부분만이라도 알고 죽는다면, 죽어서 불쌍한 귀신이 되어서 인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고생은 하지 않는다.

윤회가 되거나 영생이나 최고 차원의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왜 이 세상에는 온갖 현상들이 존재하는가?

이것은 이 세상에는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법 속에는 온갖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있다.

바로 이것이 인연이다.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은 존재해 갈 수 있다. 누구나 스스로 배우고 깨달아서 좋은 인연을 지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끝없이 밝은 날로 약속하고, 우리 자신에 의해서 끝없는 미래를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의 일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며, 세상의 일을 이해함으로써 좋은 인연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란 법칙 속에 존재하고 있는 현상의 문제 속에 있다.

그 문제가 현상을 나게 한 것이다.

현상 속에 무슨 문제가 존재하는가.

그것이 바로 진리이다.

​문제와 답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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