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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11일 변화기와 변화기 이후의 세계

1998년 10월 11일

동대신동

 

 변화기와 변화기 이후의 세계

  

 오늘은 변화기와 변화기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세상은 존재하고 있는 것과 존재하고 있는 일의 활동을 통하여 모든 현상을 존재하게 합니다. 변화기도 이러한 현상들 중의 하나입니다.


 변화기란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언자들이나 종교관련 단체들은 변화기 대신에 종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변화기 즉 종말로 인하여 현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문명들과 모든 현상의 결과물들은 파괴되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변화기에 대비하여 현 시대의 인류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현 시대로부터 새로운 시대로 생명체들을 옮기는 일입니다. 인류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깨달음을 통하여 이 과제는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한 일은 현 시대의 인류가 이런 일에 대해서 알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관심 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해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길은 끊어질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시대로의 생명체의 이동에 있어서 인류의 경우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소수의 인간들은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육체의 생명을 유지한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의 경우 이외에 인간이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깨달음을 통해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생존을 통한 이동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인간은 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은 의식을 통해서 세상의 일들을 보고 듣고 반응하고 저장합니다. 인간이 새로운 일을 만나면 그것을 자신 속에 받아들여서 기존에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과 조합하여 말과 행동의 형태로 반응을 합니다. 즉 인간은 의식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나 자신이 행한 일과 그 일들의 결과를 자신의 영혼 속에 입력하여 저장합니다. 한 번 영혼 속에 받아들여진 것들은 그 영혼이 파괴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나 스스로의 말이나 행동 혹은 그 말이나 행동의 결과가 영혼에 저장될 때,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쁜 것이 입력되어 쌓이는 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나 자신이 한 일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영혼에 입력이 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통하여 증명될 수 있습니다. 혹은 식물과 같은 생명체의 생명 활동을 통해서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화기를 통해서 영혼을 생존시키는 길은 영혼을 영생계의 수준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영혼이 그 수준이 높아져서 영생계에 이르게 되면 변화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에너지파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영혼의 수준을 올리는 방법은 영혼 속에 쌓여있는 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인간은 존재하고 있는 일에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을 떠서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사랑의 실천이 영혼 속에 쌓여 있는 업을 없앨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의 불로 업을 태울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불은 오직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에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할 때 스스로 당당할 수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과의 당당한 부딪침 속에서 비로소 사랑의 불이 생기게 됩니다. 이 불로 영혼 속에 있는 업을 태워서 없애버리면 그 사람의 영혼은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영혼이 영생에 이르게 되면 그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육체를 떠나 5백 년에서 천 년까지 머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지구가 변화기로 인하여 사람이 살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은 대략 30년 정도입니다. 변화기가 발생한 후 100 ~ 200년이 지나서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생존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방법입니다.


 변화기는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화기는 늙어버린 모든 기운이 죽고 새로운 기운이 태어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변화기가 시작되면 전 세계적으로 영화에서나 볼법한 지각 변동과 해일 그리고 화산 폭발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물과 불의 지속적인 충돌은 치명적인 파괴력을 가진 에너지파를 발생시킵니다. 이렇게 생성되는 에너지파에 의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나면 새로운 기운 생성되고 생성된 기운이 정화됩니다. 수십 년 동안 정화된 기운은 마침내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즉 정화된 순수한 기운이 생명체와 만나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생명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생명체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세상은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모든 일을 존재하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일들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존재하고 있는 일을 관찰하면 누구나 보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깊은 바닷속에 잠겨있는 유적들 중에는 6 ~ 7천 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7천 년 전에도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때로부터 또 7천 년 전에도 인류의 문명은 존재했습니다. 다가올 변화기 이후에도 인류의 문명은 존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일은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무엇이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생에 관한 문제도 현재의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변화기에 대한 나의 설명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 과학 기술을 통해서 검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스템이나 이론을 이용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들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를 통하여 세계의 비밀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문명이 가진 과학기술력 만으로는 현재의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물질이 가진 성질을 알아야 합니다. 철이라는 물질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든다고 할 때 그 철의 종류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진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즉 존재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현시대의 생명체를 새로운 세계로 이동시키는 일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물고기를 극저온에서 냉동시켰다가 상온의 물에 넣어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아직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냉동시간이 길어지면 물고기는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냉동시간이 길어지면 세포가 손상을 입어 파괴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냉동 인간의 경우에는 세포의 손상 이외에 더욱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영혼이 생명의 근본입니다. 영혼이 떠나버린 육체는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인간을 냉동시킬 때 영혼도 동시에 냉동되어서 육체를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냉동 인간에 관한 연구의 내용들에는 영혼에 관한 고려는 전혀 없습니다.


 생명체가 생존할 수 없는 상태인 변화기는 약 30년 정도 지속됩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우주정거장을 만들거나 달 위에 기지를 세워 30년 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이 육체에서 나가지 않게 냉동시키는 기술의 개발은 절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생계 이상의 수준에 올라서 변화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순수한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집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현재의 시대에서 과학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변화기 이후에 태어나서 학교나 선생을 가질 수 없어도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던 과학적 사실들을 스스로 알아낼 수 있습니다. 자신 속에 과거 자신이 한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누구한테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일을 귀신이 씐 점쟁이한테 묻습니다. 점쟁이는 남의 마음을 훔쳐볼 수는 있지만 진리를 보지는 못합니다. 진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은 절대 모릅니다. 그들이 진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을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세상의 일은 법칙에 의한 현상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 좋은 일도 만들어질 수 있고 나쁜 일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저는 항상 모든 길흉화복의 원인을 존재하고 있는 일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존재하고 있는 것과 존재하고 있는 일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나타나는 현상들의 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생명체의 이동은 존재하고 있는 것에 먼저 눈을 떠서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이 자신이 쌓아놓은 업을 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세상에서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 사랑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이나 그들이 속한 사회가 무작정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만 급급한다면 그 사회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을 가르쳐서 일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들을 축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돈은 며칠이 지나면 없어져 버립니다. 이런 식이라면 그들을 평생 먹여 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쳐서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그들은 비굴하지 않고 떳떳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옛날 부처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일은 아주 작은 공덕이고 사람을 깨우쳐서 잘살게 하는 일은 큰 공덕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을 깨우쳐야 할까요?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그들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깨우침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귀신이 씐 사람들에게서 배우려고 합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깨우침이 찾아온다고도 말합니다. 배우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어떻게 농사 짓는 법이나 자동차나 비행기 운전하는 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영혼으로부터 파생된 기운에서만 만들어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정(精)과 주변에 있던 신선한 기운이 만나서 합쳐져도 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영체 속에 아무것도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의 접촉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영혼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일을 배우고 깨우쳐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일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각자 고유한 자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사 좋은 것들에 대해서 들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깨우치려는 좋은 말과 자신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두 기어(Gear)의 이빨이 끼워맞춰지지 않으면 기어가 작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맞지 않으니 외면해버립니다. 즉 여러분들이 있는 일을 알고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을 축복하고자 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해서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존재하고 있는 일을 알아야 자신의 속을 태울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자신들의 가슴이 조금 뜨겁다고 자신의 속도 탔다고 말합니다. 업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열은 계속적인 부딪힘을 통해서만이 생성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튕겨나옴을 반복하는 동안에 비로소 불이 만들어지고 업을 태울 수 있게 됩니다.


 한 마술사가 TV에 출현해서 기합을 주니까 숟가락이 휘어집니다. 그가 숟가락을 휘어지게 만들었다고 해서 인간이 잘 살 수 있을까요?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귀신의 장난입니다. 그에게 언제부터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어떤 빛이 자신의 속으로 들어오고 난 후부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빛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영체 즉 귀신입니다. 어떤 영체가 자신에게 들어온 것이 그런 이상한 일 즉 마술을 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영체 즉 귀신이 가르치는 단체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깨달을 수 있다고 광고를 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귀신이 들어와서 모르는 것들을 가르쳐준다고 하는데 그 귀신이 세상의 일을 안다면 왜 다른 사람 몸에 붙어 있겠습니까? 스스로 윤회를 하겠지요. 윤회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귀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무지와 그 무지가 만들어놓은 애착 때문에 사람들 곁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보지도 않고 삼천리나 떨어져 있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 일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귀신의 장난입니다.


 승려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그들이 하는 일이란 소금을 삶아 먹으면 질병이 낫는다든가 묫자리를 어디에 쓰면 복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금강경을 몇 번 읽어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금강경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절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존재하고 있는 일을 외면한 채 내가 하는 말만 배워서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여러분의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의 생명을 구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세상으로의 생명체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일입니다.


 지난번의 영국 여행에서 옥스포드 대학의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역사학자를 만났었습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교수들의 교수라고 여겨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영국 역사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쌀쌀한 봄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스웨터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스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앞에서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보고 질문을 한 반면 그는 책을 통해서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보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역사 책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실제적 상황 속에 두고 물었습니다. 그가 읽었던 책들 속에서는 실제적인 사실들이 빠져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역사책 속에는 한 사람의 시체는 있는데 그 사람의 영혼은 없습니다. 책을 통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책 속에는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존재하지만 역사 속의 일들을 일어나게 했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는 목적은 존재하고 있는 일의 실체를 알아서 자신 속에 재앙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깨달음을 통해서 행복과 평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외에 여러분들이 이곳에 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실체없는 이야기를 한다든가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일일까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진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진실을 알면 우리가 하는 일은 그만큼 수월하고 그만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곳에서만 배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놀고 싶을 때는 노세요. 그러나 깨어있을 때는 현실 속에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르침입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나의 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 가르침이 있구나.”


 잘못하면 나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살지는 않습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서 겪고 나서야, 재수가 없으면 나쁜 사람을 만나서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이 바로 가르침입니다. 나쁜 일을 보고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을 알게 되는 것이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깨달은 자를 찾아와서 묻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런 원인으로 일어나게 되었으니 당신은 이러한 현상을 본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 현상 속의 일과 어울려서는 안되었다. 당신이 그 일에서 고개를 돌림으로써 당신은 이런 것을 잃었고 이런 것을 새로 얻었다.”


 이런 식으로 가르쳐 줍니다. 깨달은 자로부터 배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깨달은 자를 통해서 존재하고 있는 일을 배우면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빠르게 깨달아서 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반이란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한 자신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열반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열반은 해탈과는 다릅니다. 해탈이란 자신의 의식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의식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에 머물면서 살아있는 자가 해탈한 자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모든 차원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세 개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생명의 세계, 영체의 세계, 그리고 근본의 세계입니다.


 생명은 삶을 통해서 영체를 남깁니다. 육신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영체만 남습니다. 생명은 물질과 기체의 결합체입니다. 기체에는 의식이 붙어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기체 즉 영체가 몸 즉 물질과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체의 세계에는 의식이 붙어있는 기체가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영체에서 의식이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근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의식을 가지지 않은 기체가 존재하는 세계를 근본의 세계라고 합니다.


 근본의 세계는 죽음과 태어남의 세계입니다. 한 세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는 세계가 근본의 세계입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석가모니가 근본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반야심경을 통해서 나는 석가모니가 해탈에 이르렀다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의식을 가진 상태로 영체가 근본의 세계에에 머물수 있어야 해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업이 쌓여있는 의식을 가진 영체는 의식을 가진 채로 근본의 세계에서 절대 머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육체가 살아있는 생명의 세계에 존재하다가 죽으면 의식을 가진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영체의 세계로 옮겨갑니다. 윤회가 가능한 영체의 경우에는 의식이 사라지는 근본의 세계를 통과하여 다시 생명의 세계로 돌아와서 생명활동을 하게 됩니다. 해탈을 이룬 자들은 생명의 세계에서 역으로 근본의 세계로 들어가서 머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 하에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해탈을 이룬 자들은 어떻게 근본의 세계에서 머물 수 있을까요? 인간의 업이 전부 없어지면 근본의 세계에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근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체 즉 영혼은 의식과 기체(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운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식이 사라지면 윤회를 하는데 의식이 사라지고 생명이 부활하는 이 세계를 죽음과 태어남의 세계, 근본의 세계라고 합니다. 의식이 사라지지 않으면 절대 윤회할 수 없습니다.


 티베트에는 린포체 라고 불리는 승려가 있습니다. 티베트에는 나이든 승려가 죽고 환생한 승려를 림포체라고 부르며 지도자로 받듭니다. 그런데 그 현상은 환생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아기의 몸에 영체가 붙는 현상입니다. 즉 림포체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영혼을 가진 일반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치는 일도 힘이 들지만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을 깨우치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린포체가 대단하다고 받들고 있습니다. 


 의식이 사라지지 않으면 윤회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의식이 사라지고 윤회를 하면 전생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절대 알지 못합니다.


 전생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인가가 붙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생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전생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변화기는 6천에서 7천년의 주기로 세상에 발생합니다. 만약 변화기가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은 자체적으로 파괴되어 버립니다. 자원의 고갈과 오염 등으로 인하여 세상은 자멸해 버립니다. 변화기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이상하거나 기형적이거나, 악(惡)한 것들만 생겨나고 선(善)한 것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결국 지구 위의 땅은 쓸모 없이 되어버리고 물도 소멸되어 버리고 기층도 사라져버립니다. 달과 같은 행성이 되어버립니다 지구에 변화기가 주기적으로 발행함으로써 인류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기를 절대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변화기는 과거의 세상에도 있었고, 미래의 세상에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앞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 시간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기회에 인연을 통해서 깨닫게 되면 여러분에게는 끝없이 밝은 앞날이 계속됩니다. 여러분이 살게 될 수 많은 내세의 삶에서 끝없이 밝은 날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한 번 자신 속에 쌓인 일은 의식체가 사라져도 기운에 저장되어 다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은 깨달음이라고 해도 그 깨달음은 끝없이 자신을 밝은 곳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있다가는 인류의 구원은 고사하고 내 자신도 구원할 수 있을 지 모르는데 한국에 더 머물러서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외국에 나가면 지식인들 속에서 큰 소리를 칩니다. 장님의 앞에 가서 눈뜬 자가 큰 소리를 못 친다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일은 제가 세상 일을 하는데 여기 있는 사람 몇 사람 말고는 관심조차 갖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진짜 깨닫지 않았고 세상 일에 사명을 가지지 않았다면 저는 세상 일은 절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나의 누이도 속아서 돈 십만 원을 내라면 내지, 인간을 깨우치고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에는 십원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자신을 태워야 하고 어떻게 자신을 구원할 수 있고, 그 일로 인해서 여러분의 끝없는 내세를 통해서 복을 받게 되는가 하는 일들을 이제 알았을 것입니다. 힘든 일을 해보아야 힘든 일을 해도 힘이 안 드는 법입니다.


 옳고 그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배워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랑도 양심도 정의도 자신 속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지 사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는 팔다리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감정 즉 동정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 거지들을 위해서 동정을 하는 사람들은 보았지만 진정 세상을 축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헛된 삶을 버리고 존재하고 있는 일을 하나라도 더 배워서 남은 여생이라도 행복한 삶을 마련하십시요.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거든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배워서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을 하십시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복을 얻는 길입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일로 인하여 손해를 입게 됩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행하게 되면 내가 한 만큼의 대가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란 존재하고 있는 일을 말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만일 한 사람이 손뼉을 쳐서 큰 소리가 났는데 다른 사람이 손뼉을 쳤는데 작은 소리가 났다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일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똑같은 씨앗을 땅에 심었는데 어떤 집 밭에는 수확이 좋았는데 다른 집 밭에서는 그만한 수확이 나지 않았다면, 그 속에 어떤 일이 존재했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는 모든 희망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어떤 길도 존재합니다. 영생, 깨달음, 해탈, 부자가 되는 길, 대통령이 되는 길, 등 전부 다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깨달으면 밝은 세상을 볼 것이고, 깨닫지 못하면 어두운 세상을 볼 것입니다. 알면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복을 받고 모르면 존재하고 있는 일이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질문을 받고 이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질문 : 사람이 진실한지 진실하지 않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됩니까? 사람은 진실한지 않은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까?


 대답 : 우리가 사물은 볼 때 어떤 사람은 제대로 보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진실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마다 진실이 다 같지 않습니다. 진실이 큰 사람이 있고, 진실이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진실이 큰 사람은 거짓을 잘 말하지 않고 항상 있는 것을 말하지만 진실이 부족한 사람은 존재하고 있는 것에 무언가를 더하던가 빼는 등의 거짓을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진실한 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일을 보면 그것을 행한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양심이 있으면 진실합니다. 양심이 있는 자는 남의 일을 할 때에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받는 보수 만큼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인간의 진실성입니다. 이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수천 억 달러의 외채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진실성입니다. 진실성은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질 수 지만 사회의 환경에 의해서 파괴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만큼 존재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배우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은 진실하게 길들여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진실에 대한 기준은 존재하고 있는 일에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상대방의 진실을 어느 정도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두 번만 보았을 때는 속을 수도 있으니까 계속해서 관찰을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다보면 본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본성을 보고 그 사람의 진실을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질문 : 진실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은 따라야할 기본적인 어떤 원칙같은 것이 있습니까?


대답 :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를 때는 당연하게도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일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 거짓을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종교에 계율이 있는데 왜 계율이 필요한가 하는데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계율을 지키면 스스로 나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 번 나쁜 일을 하게 되면 그 나쁜 일은 자신 속에 입력이 됩니다. 후에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무의식중에 이전에 행한 나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길이 틀어져 버립니다. 결국 계속해서 그 나쁜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즉 의식은 존재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신 속에 저장하고 자신 속에 저장된 것은 그런 비슷한 일을 계속해서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깨달음을 얻는 기본은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실성을 아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똑바로 알아야 깨달음이 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계속해서 행해오던 나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수 백 수 천 번을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쁜 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나쁜 일을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몸은 의식의 지배를 받고, 의식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의해서 어떤 환경에 부딪치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진실되게 살고 싶다면 먼저 깨달음과 접해야 합니다. 깨달음과 접하기 위해서는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고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알게 되면 거짓말을 안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알 때 그것을 바꾸어서 말하는 것이 참 힘들어집니다. 악의 원인은 무지입니다. 무지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악입니다.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서 나의 무지가 고쳐지지 않습니다.


질문 :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나쁩니까?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쁩니까?


대답 : 거짓을 말할 때 누군가가 그 거짓을 있는 그대로 믿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속임수가 되지요? 어떤 거짓을 믿고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남에게 시간적 물질적 손실을 주게 됩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중의 첫 번째는 거짓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한 번 거짓말을 하면 다음에는 거짓말을 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자꾸 하게 되면 그 거짓말이 의식을 변화시키게 되어 계속해서 같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면은 자신을 나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짓은 인간 사회에 가장 무서운 폐해를 주는 원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질문 : 여래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서도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 만일 나의 가르침을 대하지 않고도 사람이 진실한 삶을 산다면, 아마도 그는 극락세계에서 머물다가 좋은 근본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서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충분히 좋은 근본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자는 깨달음이 없다면 절대 진실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의식을 현실세계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계속 있는 일을 설명을 합니다.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장황해 질 때도 있고, 여러분이 바라지 않는 쪽의 이야기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여러분들의 관심을 존재하고 있는 일에 집중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으면 계속해서 질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만나지 않더라도 항상 존재하고 있는 일을 알 때까지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면 속는 일이 적을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배워서 깨달을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저의 도움이 없어도 여러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계속 나와서 내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 스스로가 좋은 인연을 지어야 좋은 일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어느 정도 나쁜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여러분들이 경험해야 할지도 모르는 나쁜 일들을 많이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 시간을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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